지난 6월, 초등학생을 학교에서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은 범행 전날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10대가 등장하는 '야동(야한 동영상)'을 무려 52편이나 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등장하는 일본 음란물이 대다수였고, 납치·강간과 관련된 음란물도 4~5편 있었다. 김수철은 이 음란물을 인터넷 웹하드(파일 공유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았고, 그의 통장 거래내역에는 웹하드 업체로 송금한 내역도 찍혀 있었다.
지난 5월 서울 봉천동에서 15세 여중생 A양이 23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A양은 귀갓길에 또래 남자 중학생 2명에게 아파트 옥상으로 끌려와 성폭행당한 뒤 이들을 피하려 비상계단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가해 학생인 이모(14)군은 경찰 조사에서 "'야동'에서 본 것을 따라 해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웹하드를 통해 무한대로 확산되는 '야동'이 성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흉악한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웹하드로 음란물을 상시적으로 접하는 '야동 중독'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부연구위원은 "최근 아동 성범죄가 급증한 것은 아동 포르노가 확산돼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진 탓도 있다"고 말했다.
◆웹하드가 '야동'의 메인통로
12일 오전, 한 웹하드 사이트에 들어가 '강남'이라는 검색어를 쳐봤다. '강남 미소녀' '강남 몰카' '강남빠 여사장' '강남1%빠 안에서 2차까지'…. 한 페이지가 '19금(禁) 야동' 파일로 도배됐다.
이 사이트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드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회원 가입할 수 있고, 19금 파일도 이름과 주민번호만 입력하면 한번 성인 인증으로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었다. 미성년자가 부모 등의 주민번호를 도용해도 걸러낼 장치가 없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무료 또는 편당 500원 미만에 음란물 파일을 자기 컴퓨터에 내려받을 수 있다.
이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하드는 야동이 무수히 재생산되는 메인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웹하드에서 유통되는 콘텐츠 중 음란물이 약 90%를 차지하고, 음란물을 통한 매출은 웹하드 업체 전체 매출의 50~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웹하드 업체 G사, A사 관계자).
2007년 12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의 범인 정성현은 한동네에 사는 초등생 2명을 납치·성폭행한 후 토막 살해해 사체를 유기했다. 정성현의 컴퓨터에서는 700여편의 음란 동영상이 발견됐는데, 이 중 어린이와 성관계를 갖는 이른바 '로리타' 음란물도 다수 나왔다. 경찰은 정이 평소 가학적 성행위가 담긴 동영상을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며 웹하드를 통해 음란물을 모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웹하드 업체 '허가제'로 가야"
허술한 성인인증 장치로 청소년들이 유해환경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일부 청소년들은 웹하드에서 '야동'을 다운 받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유포하기도 한다. 청소년이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건수는 2005년 148명에서 2008년에는 975건으로 7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웹하드 업체에 대한 규제는 사실상 '0(제로)'에 가깝다. 아직까지 웹하드 사업주가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고, 일부가 '음란물 유포 방조죄'로 벌금형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웹하드는 신고만 하면 열 수 있기 때문에 설사 불법으로 적발되더라도 기존 사이트를 폐쇄하고 새로운 사이트를 열면 그만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136개의 웹하드 사이트가 폐쇄·통합됐는데도, 현재 330여개의 웹하드 사이트가 성행 중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원상 박사는 "미국·유럽 등은 음란물 유통을 방조한 사업주에 대해 책임을 강하게 묻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검색 금지어를 설정하는 등 불법 음란물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검열할 권리도 없고 여력도 없다'는 핑계로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은 '아동 포르노'에 대해선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한 남성 전직교사가 아동 누드사진 20장을 다운로드받은 혐의로 징역 200년형을 받았고,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인터넷으로 아동 포르노를 본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만으로도 유죄 판결이 나왔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을 완벽히 갖춘 업체에만 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포함해 웹하드 업체를 규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