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작품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것이 ‘화녀(1971)’이며, 이 영화는 ‘화녀’의 속편 격이다. ‘충녀(蟲女)’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온갖 기이한 설정과 연출로 엽기적인 스릴러의 한국적 고전이 됐다. ‘화녀’에 이어 윤여정 남궁원 전계현이 주연을 맡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첩 신세였던 명자(윤여정)는 아버지가 본처에게 가버리자 생계를 도우려고 호스티스가 된다. 술집에서 김동식(남궁원)을 만난 그녀 역시 김동식의 첩이 되고, 김동식의 본처(전계현)는 남편의 성 불구를 치료하려고 그녀를 받아들인다. 명자가 아이와 가정을 원하자, 본처는 억지로 남편에게 정관수술을 시킨다. 이후 명자의 집 냉장고에서 갓난아기가 나오고 쥐가 엄청나게 번식하는가 하면, 아기가 쥐를 잡아먹는 일들이 벌어진다. 김기영 감독은 '하녀' 이후 부르주아 가정의 무기력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여인들의 욕망을 그렸다. 이 시리즈들은 당시 주류영화들과는 딴판인 작법으로도 큰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영화는 공포를 거쳐 스릴러와 판타지로 이행하며 기이하게 진행된다. 영화 중반 사탕을 이용한 정사 장면은 그 색감과 사운드, 그리고 스크린 너머 느껴지는 끈적한 촉감 때문에 독특한 섹슈얼리티를 발산한다. 김기영 감독은 이 영화를 '육식동물(1984)'로 리메이크했다. 원본 필름이 유실돼 스페인어 자막본으로 방영된다. 1972년 작.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