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박현철 기자]"아유, 저 같은 선수한테 인터뷰 시간이라니요".

14년 전 프로-대학은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의 이목까지 집중시켰던 그는 너무도 겸손하고도 진중하게 답변에 응했다. 그러나 공손한 가운데서 양순해 보이는 눈빛 속에는 열정이 숨어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손지환(32. 한화 이글스). 지난 1997년 휘문고를 졸업하고 '천재 내야수'라는 평을 받으며 LG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으나 기대만큼의 성장세를 올리지 못하고 KIA로 이적한 뒤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등 나름대로 족적을 남겼으나 삼성-SK를 거치며 잊혀져갔던 내야수다. 올 시즌에는 일본 독립리그 한국인 팀 코리아해치에서 뛰다가 한화와 신고선수 계약을 맺은 뒤 정식계약까지 성공했다.

2군 남부리그 22경기에 출장해 3할1푼5리(73타수 23안타) 4홈런 14타점의 성적을 올린 뒤 송광민의 군입대, 오선진의 부상으로 공석이 된 3루 자리를 꿰찬 손지환은 1군 성적 5경기 3할3푼3리(15타수 5안타, 2일 현재) 1타점을 기록 중이다. 처음에는 불안한 수비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는 강습 타구에도 몸을 던지며 점차 1군 무대에 적응 중이다.

특히 지난 7월 31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좌익수 방면 1타점 쐐기 2루타를 때려내며 6-3 승리에 공헌하기도 했다. 손지환을 영입하던 당시 한대화 감독은 "송광민을 대체할 주전 3루수로 생각하고 데려온 것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으나 상대적으로 빈약한 선수층인만큼 손지환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에게 코리아해치 시절의 이야기를 먼저 물어보았다. 일본 내 한국인 팀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의미있는 창단 과정을 거친 코리아해치였으나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후원을 약속했던 이가 선수단 운영을 위한 자금을 챙겨 도주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파행의 길을 걸었던 바 있다. 그동안 손지환을 비롯한 선수단 전원은 약속했던 급여에 훨씬 못 미치는 봉급을 받으며 그라운드에 나서는 등 연이은 아픔이 있었으나 선수 본인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때는 각오를 하고 갔습니다. 몸을 만들고 나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국내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거라고. 고생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일본 내 다른 팀에 입단했더라면 언어 문제 등을 비롯해 더욱 어려웠겠지요. 특히 KIA 시절 사제의 연을 맺었던 박철우 감독께서 제 무너진 타격폼을 수정해주신 덕택에 한결 나아진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휘문고 시절 함께 키스톤 콤비로 호흡을 맞췄던 1년 선배 정원석이 있다는 점은 손지환에게 또다른 힘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똑같은 방출 선수 입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어 1군 무대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원석이 형도 두산에서 방출된 뒤 한화에서 기회를 얻어 주전으로 출장 중이잖아요. 저 또한 일본에서 국내 프로야구 실시간 중계를 지켜보며 거듭 다짐했고 2군에서도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악착같이 훈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구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어요".

최근 몇 년 간 손지환은 운이 없었다. 특히 지난해 삼성 방출 후 SK에 입단해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성실하게 훈련했으나 전지훈련 첫 날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는 불운을 맛보았다. 그리고 지난해 그는 1군에서 단 6경기 출장에 그친 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 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전지훈련 첫 날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지 못했어요. 방출 후에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 동시에 더욱 야구에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 속에 일본 독립리그 행을 결정했고 어려움 속에서도 출장 기회를 잡았던 손지환. 독립리그 수준과 국내 2군 수준과의 비교에 대해 묻자 손지환은 "독립리그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라며 경기 감각 고양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음을 밝혔다.

"국내 2군 경기도 주 6일 경기를 하기 때문에 2군에서 4~5선발 급 투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잖습니까. 반면 독립리그는 주로 주말에 경기를 하기 때문에 거의 매 경기 원투펀치가 가동되는 경우가 많아요. 투-타에 걸쳐 운동능력면에서는 결코 2군 정상급에 뒤지지 않는 선수들도 볼 수 있어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2루타를 때려냈던 그 경기서 득점에 성공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3년 만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라며 또 한 번 웃어보인 손지환.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가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야구가 간절하다"라는 이야기였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제 자신에게 야구가 너무 간절하니까요. 게다가 최근 들어 야구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팬 여러분들이 직접 구장에 많이들 찾아주시니 선수에게는 야구할 맛이 절로 나게 마련입니다".

코칭스태프나 신고선수에게 지급되는 70번대 등번호(75번)를 지급받은 손지환. 그러나 그는 신고선수 계약에서 정식 계약에까지 성공했고 이제는 1군 무대를 다시 밟고 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만큼 제대로 살려내겠다는 각오는 더욱 분명했다.

"경기를 하면서 즐겁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게다가 신고선수 계약 후 정식 계약이라는 흔치 않은 경우로 1군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팀에 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야구에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제는 야구를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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