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이다정 기자] KBS 2TV '개그콘서트' 속 인기 코너 '두분토론'에서 '남하당' 박영진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여당당' 대표 김영희. 클래식한 의상에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박영진을 제압(?)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40대 아줌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는 여성스러운 치마만 입고, 요리 솜씨도 빠지지 않는 스물 일곱의 '천상 여자'. 앳된 얼굴에서 어쩜 그런 아줌마 파워(!)가 나올 수 있는지 인터뷰 내내 신기할 정도였다. 브라운관에 데뷔한 지 이제 두 달. 관객과 시청자를 압도했지만 아직은 꿈도, 고민도 많은 '파워 신인' 김영희를 만나봤다.

▶'남보원' 잇는 '여보원'이라고? "그런 말 너~무 좋아요"

'두분토론'은 일상 생활에서의 남녀 차별에 대해 극단적으로 묘사하며 웃음을 주는 풍자 코너다.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남하당 대표 박영진이 "어디 감히 여자가 발에 물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느냐"고 비상식적 논리를 주장하면, 김영희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물놀이하는 해변에는 박태환, 소지섭 같은 남자만 들여보내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귀청이 터질듯 흥분하는 두 사람의 뻔뻔한 연기력과 리얼한 상황 묘사가 사람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안긴다.

"원래는 몇 달 전에 공채로 들어온 '생짜 신인'인 내가 포함된 내용이 아니었다. 막내 몇 명이 선거철 아줌마 연기를 위해 투입됐는데, 공채 시험 때 '~한다, 그죠?'라는 말투로 아줌마 연기를 했던 것을 김석현 PD님이 기억했는지 바로 해보라고 하더라. 정말 운이 좋게 투입됐다."

그렇게 시작된 첫 녹화는 긴장과 부담감이 뒤범벅돼 정신없이 끝났다. 녹화 내내 박영진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본인의 목소리와 박수소리만 겨우 들은 후 멍하게 내려온 결과는 대성공.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아직도 '이게 현실인가' 싶다.

"대구에 계신 어머니가 첫 방송을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 아직 주목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아주머니들과 여고생들이 '여당당이다!'라며 알아보니 기분이 좋다. 함께 코너를 하는 박영진 김기열 김대성 선배가 항상 나를 끌어주기 때문에 배우면서 한다. 나와 같은 경상도 출신인 박영진, 김대성 선배는 무뚝뚝하지만 결정적일 때 나를 배려해주시고, 김기열 선배는 최고의 브레인이라 아이디어에 많은 도움을 주신다. 그래도 세 분 모두 나에게 여자 대접을 해주시지는 않는다(웃음)."

김영희의 도발적인 발언은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고충을 대변해주는 인기코너 '남보원'에 이은 '여보원'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술집에 있는 소주 포스터에 왜 여자만 벗고 있냐, 남자도 홀딱 벗겨라" "일곱 살 짜리 남자 아이는 일어선 키가 나만 해서 음흉하게 쳐다본다. '남자 아이들' 대신 '남자 아이돌'이 여탕에 출입하라"는 속시원한 발언이 여자들의 욕망을 대신 드러내주기 때문.

"'여보원'이라는 말 너~무 좋다(웃음). '두분토론'이 '남보원'과 차별화되는 점은 비유를 돌리면서 더 세게 나간다는 것이다. 양측 입장을 들어주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내 역할은 대부분 개그로 받아들이면서도, 박영진 선배의 개그는 좋아하는 사람과 정색하는 사람이 반반이더라. 이런 면 때문에 남녀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여자 입장인 내가 더 강해져서 박영진 선배를 심하게 골탕먹이는 역할을 하면 균형이 맞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더 잘 하느냐에 달렸다."

▶끼 많은 어머니의 아바타…"'사랑과 전쟁' 중독자라 아줌마 연기 저절로"

대구에서 주변 친구들을 웃기던 '동네 개그맨' 김영희는 영상제작을 전공하던 대학교 시절,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점에 개그에 대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친구의 권유로 서울에 올라와 소극장 오디션을 보고 다시 내려갔는데 순식간에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일주일 내로 어머니와 '합의 하에 헤어지기로' 하고,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스물 다섯에 개그를 시작해 소극장 생활을 아주 잠깐 하다 곧장 방송사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다. 그런데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서 TV 앞에는 서보지 못했고, 고민하다 KBS 공채로 시험을 다시 봤다. 개그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얼굴을 알리게 됐지만, 소극장 생활이 너무 짧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순간적인 애드리브가 부족해 요즘 고민이 많다. 따라갈 수 없는 박영진 선배는 '무대에서 즐기라'며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개그우먼의 끼와 무시 못할 '아줌마 포스'는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다. 스스로 '어머니의 아바타'라고 인정할 정도로 어머니를 빼다 박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방송을 꼼꼼히 보며 "사투리에 액센트가 없다, 흥분만 한다"며 냉정한 모니터를 해주신다고.

"어머니 스스로도 '시대를 제대로 탔으면 내가 네 이상이었다'라고 말하실 정도다, 하하. 주변 사람들의 전화를 많이 받는건 좋아하시는데, 나와 닮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시더라(웃음). 아줌마 연기는 어머니를 닮은 것도 있지만 평소에 '사랑과 전쟁'에 중독돼 있었다. '사랑과 전쟁'을 애청하며 아줌마 캐릭터를 항상 연구한 결과가 유종의 미를 거둔 것 같다."

능청스러운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지만, 배울 것이 많은 신인이기에 '두분 토론'의 여성차별 소재 수집을 위해 매일 몇 시간씩 인터넷 검색을 하고 주말도 반납한 채 아이디어 회의에 돌입한다. 드센 아줌마 역할을 맡아 얼마 동안은 남자친구 만들기도 포기했다. 생기기만 하면 평소 솜씨를 발휘해 옥돔구이와 닭도리탕 등 육해공을 한데 모은 '푸짐한 식사'를 차려줄텐데 말이다.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이제야 하는 거라 개그에 매진하고 싶다. 요즘에는 '실제로 보니 예쁘네'라는 소리를 듣기 싫을 때도 있고, '아줌마 같다'는 말이 최고로 좋다(웃음). 포털사이트에 아직 프로필도 뜨지 않은 신인이니 입지를 굳히기 위해 욕심 좀 부리겠다. 한 번 출연하고 끝난 '슈퍼스타 KBS' 코너에도 다시 한 번 나가보고 싶고 말이다, 하하."

<anbie@sportschosun.com 사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