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만화에 대한 모독인가 뛰어난 영화적 재탄생인가. 영화 '이끼'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원작 그대로만 연출했어도 이번 영화보다는 나았다"는 비판과 "원작 만화의 영화화란 이런 것"이란 찬사가 격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이끼'는 개봉 2주만에 관객 220만명을 돌파(26일 현재)하며 성공적 흥행을 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2명이 '이끼'를 지지하는 이유와 비판하는 이유를 각각 보내왔다.
"만화는 만화고 영화는 영화야"… 역시 강우석! 폭발력 있는 캐릭터
나는 '이끼'를 네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두 번째가, 두 번째 볼 때보다 세 번째가 더 재미있었다. 네 번째는 지루했는데, 후반 클라이맥스에선 다시 몰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세 번째 볼 때까지 내게는 거듭 음미할 만한 디테일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원작 만화에서의 추상화된 캐릭터 면면들이 영화 스크린에선 배우들의 육체를 통해 일상적인 질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좋았다. 원작 만화를 30%가량 읽은 상태에서 영화를 먼저 본 나는 나중에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때도 영화 쪽 캐릭터 묘사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끼'를 비판하는 평자들이나 부지런한 블로거들의 반응을 보니 대개 영화가 만화를 망쳐놓았다는 쪽이었다. 원작 만화의 팬이라면 아마도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위대한 명작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윤태호의 만화도 훌륭한 작품이다. 사람들은 이 원작이 영화적인 센스를 겸비한 고도의 양식미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여백과 함축과 칸 사이의 비약을 정교하게 이용한 지극히 만화적 개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길 듯이 진행되는 만화와 달리, 영화는 당겼다가 풀기를 되풀이하는 친절한 호흡으로 서사를 재배치했다. 원작을 지배하던 어두운 누아르톤도 상당 부분 제거했다.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마을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원작의 플롯은 비밀이 어느 정도 해명된 상태에서 벌이는 인물들 간의 대결 이야기로 바뀌었다.
나는 영화 '이끼'에서 원작보다 더 나아간 지점이 있다고 본다. 원작 만화에서는 고도로 양식화되고 추상화된 인물들의 면면이 우리가 거리를 두고 가늠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축약도 같은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영화 '이끼'의 캐릭터들은 훨씬 일상적 질감이 있는 이웃들 같은 느낌이다. 이상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에게 죄의식의 강박을 주는 권력자와, 타락했지만 구성원들에게 뭔가 떡고물이라도 남겨줄 것 같은 권력자 사이에서 택일을 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을 묻는 쪽에서라면, 영화가 훨씬 인상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이 우리와 비슷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정재영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가 다 뛰어나지만 원작과 달리 크게 변형을 가한 두 인물, 김덕천(유해진)과 이영지(유선)의 캐릭터 설정은 단순하지만 폭발력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강우석의 직감을 증명하는 성취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역할 설정에서, '좋은 권력자를 갈구하는 척하는 우리가 권력에 필수적인 악한 속성을 개별적으로 과연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묻게 된다. 원작과 달리 모든 걸 접수한 영화 속 영지의 눈빛, 그걸 잊기는 힘들다. /김영진·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차라리 원작 그대로만 찍었어도!"… 패를 먼저 보여주니 땀이 안 나지
원작과의 비교는 치워버리자. 각색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원작과의 연관성이 아니라 바뀐 매체에 얼마나 최적화되었는가다. 원작을 얼마나 바꾸거나 망쳤는가를 묻지 말고, 스릴러 영화로서 '이끼'의 완성도를 따져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끼'는 중요한 패를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목형과 천 이장의 과거사가 무엇인지, 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모두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늘의 법과 구원을 상징하는 유목형, 지상의 욕망과 복수를 갈구하는 천 이장의 대립은 흥미롭다. 하지만 이 프롤로그가 영화에는 오히려 해악을 끼친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뿐이지 다음 일이 궁금해지지 않는 것이다. 천 이장이 유목형을 배신하고 축재를 했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줘 버리니, 호기심이 증발해버린다.
마을의 역사를 류해국만 모르고, 관객은 알고 있다. 이럴 때 긴장감을 주려면, 류해국을 끊임없이 진실 주변에 맴돌게 해야 한다. 하지만 류해국이란 인간은 도저히 요령부득이다. 류해국이 비밀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저 부동산뿐이고, 마을사람들이 저마다 그에게 나타나서 흰소리를 하거나 위협을 하는 것 정도다. 진실에 육박하는 긴장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장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밝혀내는 박 검사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그렇게 정의로운 박 검사가 과거에 피해자였던 류해국을 가해자로 만들려 했던 이유는? 강우석은 캐릭터의 성격만 아니라 관계까지 극히 단순화시킨다.
사실 강우석은 박찬욱이나 봉준호처럼 다층적인 인간형을 창조하는 감독이 아니다. 최고 걸작이었던 '공공의 적'은 일말의 양심으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공공의 적'을 적시하고, 보통사람의 상식과 정의감 정도만 있는 강철중이 돌진하게 만든다.
그런데 '먹물'들의 고담준론을 싫어했던 강우석은 '한반도'와 '공공의 적 2'를 거치면서 행동이 아니라 고상하게 지식인들처럼 일장연설을 통해서 설교에 열중한다. '이끼'의 클라이맥스에서도 이장 집에 모인 해국과 박 검사, 이장은 둥글게 둥글게 마주보고 서서는 목청 높여 연설 한마당을 벌인다. '이끼'는 류해국의 행동처럼 요령부득인 영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이미 관객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전개될 일도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스릴러 영화를 평가할 때 흔히 간과하는 것은, 캐릭터의 동인(動因)과 논리적 개연성이다. 인물의 모호함과 열린 결말은 그 기본기가 갖춰진 다음에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끼'는 기본기가 망가지고 얕은 노림수와 코미디로 치장한 졸작이다. /김봉석·월간 '브뤼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