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四角)의 링은 사각(死角)의 링인가. 복싱에서 삶의 의욕을 찾으려 했던 배기석(23·부산 거북체육관)이 17일 경기 후 뇌출혈 증세를 보인 지 나흘 만인 21일 숨졌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합쳐 최근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경기 중 혹은 연습 중 200여명의 복서가 사망했다. 도대체 복서들의 주먹이 얼마나 위력적이기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펀치의 파괴력은 0.5t
복서들은 12라운드 한 경기당 적을 때는 수백 번, 많을 때는 1000번씩 주먹을 내뻗는다. 상대의 날리는 주먹까지 합치면 2000번의 펀치가 오가는 것이다. 비록 글러브를 끼지만 강펀치를 여러 대 맞으면 뇌에 이상이 생긴다.
다큐멘터리 전문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복싱 펀치의 최고 파괴력은 450㎏이었다. 실험은 자동차 충돌 테스트 때 쓰는 인형을 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힘이 주는 충격은 표면에 부드러운 패드를 댄 6㎏짜리 나무망치를 시속 30㎞로 칠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복서의 주먹은 태권도(415㎏)·가라테(370㎏)·쿵후(277㎏)보다 강했다.
보통 숙련된 복서는 체중의 네 배가 넘는 힘을 주먹에 실을 수 있다고 알려졌다. 이를테면 체중 100㎏인 헤비급 선수의 주먹은 400㎏ 가까운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종합 격투기는 더하다. 한 선수가 넘어진 상대방 위에 올라탄 채 내리꽂는 힘, 즉 일명 '파운딩'은 910㎏, 태권도에서 발로 돌려차기는 가격은 710㎏, 무에타이의 무릎을 위로 올려 상대를 찍는 기술이 주는 힘은 710㎏ 수준이다.
■어떤 펀치가 위력적인가
복서들은 잽(jab), 어퍼컷(uppercut), 스트레이트(straight), 훅(hook)을 쓴다.
이 가운데 가장 위력적인 펀치는 크게 휘두르는 훅이다. 훅은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동시에 지면을 앞으로 미는 듯이 내뻗는데 이때 몸통을 회전하면서 발생한 에너지가 가슴과 어깨 근육 등에 더해진다. '힘=질량×가속도'라는 뉴턴의 운동 제2 법칙을 들지 않더라도 체중 100㎏이 넘는 헤비급 복서가 빠른 스피드로 주먹을 휘둘렀을 때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특히 펀치를 머리에 맞았을 때는 몸통에 맞았을 때보다 충격이 1.5배쯤 커진다.
■선수가 KO되는 이유
턱이나 머리에 강력한 펀치를 맞은 선수가 KO(Knockout)되는 것은 뇌의 '전기 신호'와 관련이 있다. 두개골은 흔들림을 곧 멈추지만 뇌를 둘러싸고 있는 척수액은 계속 흔들리게 된다.
이때 뇌에 신경 이상이 생겨 전기 신호가 일시적으로 끊어지면 선수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게 된다. 역대 복서 중엔 조지 포먼(76승5패·68KO)의 KO 승률이 89%로 가장 높았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KO로 이길 확률이 88%(50승6패·44KO)였다. 복싱 경기에선 어퍼컷·훅 콤비네이션이 KO의 정석이다. 어퍼컷으로 상대의 턱을 들리게 하고 노출된 안면을 훅으로 강타하는 것이다.
■복싱 금지론?
외국에선 '복싱 금지론'을 주장하는 단체가 많다. 상대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종목이라는 이유다. 1982년 WBA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했던 김득구는 챔피언 레이 맨시니에게 14회 KO로 진 후 나흘 만에 숨졌다.
이 파장으로 세계 복싱계는 15회 경기를 12회로 줄이고 스탠딩다운, '레퍼리 스톱(RSC)'등을 도입했다. 메디컬 체크로 선수 보호 방안도 강구했다. 하지만 이런 자구책에도 복싱 관련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