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의 5개 명문 악단을 일컫는 '빅 5' 가운데 하나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악장 로버트 첸(바이올린·타이완), 부악장 유 유안칭(바이올린·중국), 비올라 부수석 창 리쿠오(중국) 등 지휘자 주변의 주요 직책을 중국계 연주자들이 맡고 있다. 또 다른 '빅 5'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악장 데이비드 김, 제1부악장 줄리엣 강(바이올린), 비올라 수석 장중진 등 한국계 단원들이 강세다. 최근 뉴욕 필하모닉 첼로 부수석 출신인 하이예니(중국)가 첼로 수석으로 합류하면서 이 악단의 '아시아 파워'는 더욱 강화됐다. 보스턴 심포니의 부악장 엘리타 강(한국), 뉴욕 필하모닉의 부악장 미셸 김(한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부악장 요코 무어(일본)와 이정민(한국) 등 다른 '빅 5'도 비슷하다.
세계 유수의 명문 오케스트라에 '아시아 돌풍'이 거세다. 특히 전통적으로 아시아 연주자들이 강세를 보였던 현악 파트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목관 악기까지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국 출신의 오보에 연주자 리앙 왕은 26세 때인 2006년 뉴욕 필하모닉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수석 오디션에 동시합격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중국 베이징 음악원과 미국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뉴욕 필을 선택했다. 리앙 왕은 "거울을 볼 때 나는 중국인이지만, 음악만큼은 세계 시민"이라고 말했다. 보스턴 심포니의 오보에 부수석은 일본의 와카오 케이츠케, 신시내티 심포니의 플루트 부수석은 한국 출신인 최나경이 맡고 있다.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악원,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은 아시아 연주자들이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로 진출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이들 학교의 커리큘럼도 독주자 위주의 교육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에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대폭 변화했다.
다인종·다문화 사회인 미국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을 자처하는 유럽보다 아시아 단원들의 진입에 개방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독일 베를린 필의 악장 공모에는 일본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카지모토와 베를린의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는 중국 출신의 루 웨이 등이 지원하면서 '아시아 경쟁'으로 화제를 모았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출신의 단원들은 매년 여름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연주회를 갖는다. 서울시향 예술감독인 정명훈의 제안으로 지난 1997년 처음 결성됐고, 2006년부터 매년 음악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다음 달 중국 베이징과 한국 인천·서울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과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연주한다. 정명훈은 "아시아 국가들은 20세기에 힘겹고 상처투성이인 역사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8월 8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9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18-7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