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성체험 고백' 99년 세상이 놀랐죠! |
'나의 노화는 세월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노화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섹스에 대해 무지했던 것일까? 그저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섬세한 교감 없이 치러내는 섹스, 소극적인 섹스만 나누다 보니 진정한 육체적 사랑이 찾아왔을 때 적응을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169쪽)
1999년 10월15일 탤런트 서갑숙이 쓴 자전수필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출간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100만부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부수가 말해주듯 남성들 사이에선 "서갑숙과 그녀의 책 내용을 모르면 팔불출"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만약 고현정이나 김혜수 같은 스타가 자신의 남성편력을 거리낌없이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솔직담백한 '성고백서'는 파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튼 세상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여자 연예인의 반란(?)을 고스란히 즐겼다. 책속에 담긴 내용도 충격이었지만 그 무렵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더욱 세인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책이 출간됐을 당시에는 마침 탤런트 오현경의 'O양 비디오사건' 등 연예인들의 사생활 논란이 크게 사회적 이슈로 부각돼 있었다. 서갑숙의 용감무쌍한 반란이 파장을 키울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그녀가 자신의 '포르노그라피'를 통해 밝힌 것들은 하나 하나가 충격이었다. 수많은 남성 편력도 그렇지만 세세한 장면 묘사 때문에 밤을 새워가며 읽는 이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했다.
서갑숙은 한 마디로 대담했다. 그녀 이전의 어떤 여자연예인들이 보여주지 못한 '파격'과 '금기'를 건드렸다.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여자연예인들에 대한 시각을 일거에 바꿔버렸다. 이른 바 '척'하는 우아함의 옷가지를 스스로 벗어버린 셈이었다.
'동성간의 섹스는 물론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그룹섹스를 즐겼다.' '이 남자 저 남자와 즐긴 섹스 파트너가 무려 11명이나 된다.' 성적 관심사로만 놓고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 했다.
심지어 이혼을 앞두고 전 남편과 별거중일 때도 한 남자를 만나 '의미있는' 성관계를 맺었고, 자신에게 성을 눈뜨게 해 명기(名器)로 만들어준 남자에 대해서는 감사의 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갑숙은 1982년 MBC 1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신인시절 '베스트극장' 같은 문학적 의미를 담은 단막극을 통해 개성넘치는 이미지로 주목을 받았고, 영화는 1986년 박철수감독의 '안개기둥'으로 데뷔했다. '우묵배미의 사랑' '레테의 연가'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포르노그라피의 반란' 이후론 드라마 '이 부부가 사는 법' '연개소문' '별순검' 등에 출연했다. 주인공 보다는 조연급이 많았지만 오랜 연기경력에 걸맞는 연기파 배우로 팬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혼한 전남편은 탤런트 노영국이다.
자유분방한 연예인이라고 해서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이 없었을까. 세상사람들의 의중과는 달리는 그녀는 늘 당당했다. '포르노그라피' 출간을 전후해 그녀는 지난해 폐암으로 작고한 어머니와 경기도 마석에서 텃밭을 일구며 전원생활을 했다. 책도 쓰고 시도 썼다. 물론 연극과 드라마 등 연기활동을 지속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성을 탐닉하는 것은 종교적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도 결코 떳떳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하고, 그 책임을 감수할 자세가 돼 있다면 누구라도 성을 즐길 자유가 있다.'
서갑숙의 반란은 나름 '이유있는' 항변이었다. 공감하고 동조하는 사람도 많았다.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폄하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서갑숙은 연기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고 관념의 틀을 깬 선구자였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다만 한가지,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의 탄생이 돈 때문이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싸여있다. 서갑숙 자신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했다. 분명한 것은 파격적인 성담론 고백 이후 자신을 표출하는 여자연예인들이 급증했고 이후 연예계는 누드열풍으로 거세게 불어닥쳤다는 사실이다.
연예계 누드열풍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연예계는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다름아닌 누드열풍이었다. 김완선 이혜영 성현아 이주현 권민중 이지현 함소원 황혜영 이사비 곽진영 비키 이정민 루루 정유진 소냐 등 말 그대로 봇물을 이뤘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표출하려는 사고의 변화에는 마침 불기 시작한 인터넷이라는 하드웨어가 부추긴 면도 없지 않다. 연예인의 누드 경쟁으로 각종 사이트와 모바일 서비스 업체들도 마찬가지. 인기에 따라 수억에서 수천만원까지 개런티가 책정됐다. 연예인들의 누드가 상업적이란 비난속에서도 "웬만한 연예인들은 다 벗었다"고 할 만큼 새로운 트렌드에 매몰됐다. 서갑숙의 '포르노그라피 사건'이 촉발했음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