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성취도평가 이틀째인 14일 서울 신길동 대영중학교에서 1교시가 끝나자마자 3학년 60여명이 교사들의 시험 감독실로 내려왔다. 학생들은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학교측은 "이번 평가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성격의 시험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을 설득했고, 일부는 교실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시험을 거부한 32명은 독서실에서 독서활동을 했다. 시험 거부 32명은 대부분 전교조 교사가 담임인 2개 반 소속이라고 서울시교육청은 전했다. 대영중은 전날(13일) 평가에선 시험 거부 학생이 없었다.

14일 수업을 마친 서울 영등포고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학생들은 전날 학업성취도 평가의 시험거부자들이 대부분 전교조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급 소속이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평가 첫날인 13일 서울 대방동 영등포고에서도 학생 60여명의 시험 거부 사태가 발생했었다. 두 학교를 관할하는 남부교육청 임종근 중등교육과장은 "특정 교사가 학생들의 시험 거부를 독려했는지 여부 등 감사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영등포고에선 무슨 일이?

학업성취도평가 첫날인 13일 오전 서울 대방동 영등포고 2학년 A반 교실. 1교시 시험 감독을 위해 담임인 B교사가 교실로 들어섰다. 한 학생이 "선생님, 오늘 시험은 꼭 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묻자, 나머지 학생들도 "시험 안 볼래요"라고 외쳤다.

전교조 소속인 B교사는 학생 질문에 "교육청 공문을 보면 학생들은 시험을 거부하고 대체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돼 있다"고 대답했다. B교사는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주면서, "시험 안 볼 학생은 자율학습 등을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1교시가 끝난 뒤 A반 학생 32명 중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전원이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같은 시각, 다른 교실에서도 1~2명씩 총 4명이 "시험을 보기 싫다"며 평가를 거부했다.

이날 1교시부터 시험을 거부한 A반 이모(17)군은 기자와 만나 "선생님이 부추긴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먼저 시험 보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 반면 반 학생 전원이 시험을 끝까지 본 C반의 김모(17)군은 "아무래도 담임이 전교조 선생님인 학급 애들이 시험을 많이 안 봤다"며 "시험 거부한 애들은 1시간 먼저 집에 가거나 PC방에 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시험 거부' 소동은 1개 학급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다음 시간엔 규모가 더 커졌다. 쉬는 시간 화장실과 복도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통해 "A반 애들은 시험 안 봤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옆반 학생들이 "A반처럼 시험 보지 않겠다"고 하자, 역시 전교조 소속인 담임 D교사는 시험거부 학생들만 시험 대신 논술 공부를 하게 했다.

1교시 36명이던 영등포고 시험 거부 학생 숫자는, 2교시 들어 59명으로 늘어났고, 3교시에도 50명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이날 영등포고 2학년 10학급 중 전원이 시험을 본 건 4학급에 불과했다.

"교육청의 오락가락 지침 탓"

한 학급이 통째로 시험을 안 본 초유의 '영등포고 시험 거부' 파동은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 당국 지침을 잘못 해석한 것에서 비롯했다. 서울시교육청 이준순 중등정책과장은 "전교조 서울지부가 '대체 학습을 허용한다. 체험학습에 참여해도 무단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분회에 지침을 내렸는데, 이는 확대해석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교조 교사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시험 전날인 12일 오후 3시쯤 서울시교육청이 내려 보낸 공문에는 "학생들이 등교 후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 대체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적시돼 있었던 것이다.

그 뒤 12일 밤 10시와 13일 오전 8시, 서울시교육청이 뒤늦게 두 차례 공문을 보내 "대체프로그램은 법규 위반" "교사들은 시험 응시 거부를 선동·독려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지시했지만, 교사들 중 이 공문을 읽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오락가락한 서울시교육청의 학업성취도평가 지침이 결국 '영등포고 사태'를 낳은 셈이다.

영등포고 역시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영등포고는 처음엔 "전원이 시험을 치렀다"고 서울교육청에 보고했다가, 오후 4시쯤 교사들이 다 퇴근할 시간이 되어 뒤늦게 "답안지 미제출이 있다"고 보고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4일 영등포고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영등포고 사태'는 교육청의 불명확한 방침 때문에 생겼다"며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면 학교 전체 시험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MB에게 노벨교육상을 줘야하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