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서 대학로 무대에 재일교포 작가 쓰카 고헤이의 '뜨거운 바다―동경에서 온 형사'가 올랐다. 한국 경찰 민완수사관과 그에게 수사기법을 배우러 온 일본 형사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이복형제다. 처음엔 살아온 환경과 경험 차이로 깊은 애증을 드러내다 동생이 돌아갈 때쯤 털어놓는다.

▶"형님, 우리 재일교포는 말은 못해도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한국 사는 사람에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보기엔 부족한 인간으로 여겨지겠지만 저는 일본에서 자란 저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또 저 같은 사람을 여기까지 키워준 일본에 예의를 갖고 보답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예'라는 건요, 사람을 용서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의'라는 건 앞날에 대해 함께 꿈꾸는 겁니다."

▶그렇듯 교포 2세 쓰카가 조국과 일본에 지닌 생각은 차별과 억압과 외로움에 찌들어온 아버지 세대와는 달랐다. 그는 1948년 규슈에서 태어나 게이오대 철학과에 다니다 연극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 전공투(全共鬪)의 학생운동이 극심했지만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처지에 집주인들 싸우는 데 참견할 필요 있느냐"는 생각으로 연극에만 몰두했다. 그가 일으킨 연극의 새바람은 '쓰카 붐'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평론가들은 일본 연극사(史)를 '쓰카 이전'과 '쓰카 이후'로 나눴다.

▶쓰카 고헤이가 한국인 '김봉웅'임을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1990년 한국을 돌아보고 쓴 에세이집 '딸에게 들려주는 조국'에서였다. 일본인 아내에게서 얻은 네 살배기 딸에게 주는 글에서 그는 "미나코, 조국이란 너의 아름다움이며 엄마의 한결같은 상냥함 같은 것이다.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그 뜨거움 속에, 두 사람이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눈길 속에 조국이 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양쪽을 사랑하고 둘을 잇는 다리가 되려 했던 김봉웅이 엊그제 일본에서 암으로 타계했다. 일본 언론은 "전후(戰後) 일본 연극을 대표하는 큰 별이 너무 일찍 졌다"고 애석해했다. 그는 지난 1월 1일 쓴 유언장에서 "그동안의 과분한 후의(厚意)에 감사합니다. 딸에게 일본과 한국 사이 대마도 해협 어딘가에 뼈를 뿌려 달라고 하려 합니다"고 했다. 김봉웅을 아는 일본인들은 그를 "한국이 일본에 준 선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