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고의 부자도시 중 하나로 꼽혔던 경기도 성남시가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한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 5200억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지급유예선언(모라토리엄)을 했다.

지자체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명 현 시장 "전임 집행부가 무리하게 사업… 못 갚겠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정산이 이달 중 완료되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국토해양부 등에 5200억원을 내야 하지만, 현재 성남시 재정으로는 이를 단기간 또는 한꺼번에 갚을 능력이 안돼 지급유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현재의 성남시 재정이 어려워졌다"며 "이는 전임 (이대엽 시장) 집행부가 지난 4년간 판교특별회계에서 5400억원을 전출해 신청사 건립과 공원로 확장공사 등 '불요불급'한 거대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 경기도, LH와 공동으로 판교신도시 조성사업을 해 온 성남시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판교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쓰여야 할 판교특별회계에서 5400억원을 빼내 공원조성 등 일반회계 예산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5200억원은 공동공공사업비(2300억원)와 초과수익부담금(2900원)으로 공동 사업 시행자인 LH와 국토해양부에 내야 할 돈이며, 이 돈은 올해 성남시 일반회계의 45%를 차지하는 액수다. 이 시장은 "이에 따라 성남시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23%(5345억원) 감소한 1조7577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호화청사 지적을 받은 신청사 건립에도 판교특별회계에서 일부 돈이 들어간 것으로 새 집행부는 파악하고 있다. 호화 청사를 짓느라 일반회계에서 청사건립비로 사용했고, 이를 메우느라 판교특별회계에서 수천억원을 전용해 2010년도 복지사업이 중단됐다는 시의회 야당 의원들의 지난해 12월 문제 제기가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대엽 전 시장 측 "성남시 재정자립도가 70%인데… 정치쇼"

이에 대해 이대엽 전 시장측은 "재정자립도가 70%에 가까운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현 시장이 공약한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임 집행부는 판교특별회계 전입금을 올해 1천억원, 내년과 2012년 각 2000억원씩 갚아나갈 계획이었다.

이재명 시장의 발표 이후 성남 지역에서는 '시 재정이 정말 그 정도로 파탄이 났나' 하는 의문과 '재정자립도가 우수한 성남시에 공연히 위기감을 던져주고 있다'는 지적이 어지럽게 흘러나온다.

시청 안팎에서는 '무언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8년간 성남을 이끌어온 한나라당 이대엽 전 시장의 실정을 부각시켜, '시민을 위한 행정'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민주당 시장으로서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이재명 현 시장이 후보 때부터 강조한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에 가하는 압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는 전임 시장 시절 추진이 중단된 시립병원 건립, 성남1공단의 공원화, 옛 시가지 공원 조성, 분당-수서 지하차도 건립 등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이들 사업을 모두 실현하려면 1조원 가까운 큰돈이 들어가지만 성남시의 재정은 이를 충당하기에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시장은 위례신도시 사업권과 시흥.신촌.고등동 보금자리주택 사업권을 확보하고 성남시 신청사를 민간에 매각해 이들 사업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정부 등 여러 기관과의 협조가 필요한 이런 사업에서 성남시가 '파이'를 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신청사 매각에 이어 지급유예라는 '깜짝 발표'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시의 재정자립도가 70%를 넘어설 정도로 부자 도시인데 돈이 바닥나 판교특별회계 전입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깜짝 쇼'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