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스페인-독일(4강전), 더반]

미드필드 싸움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제압한 경기였다. 독일은 이번 월드컵에서 탄탄한 수비와 빠른 속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팀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은 완벽한 패스게임을 선보이며 독일에 공격할 기회조차 제대로 내주지 않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속공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인터셉트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상대방이 공격에 참여하면서 수비진의 균형이 깨져있을 때 볼을 가로채 그 틈을 노리는 것이 속공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90분 내내 균형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전 스페인 경기 관전평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페인 전술의 핵심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다.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기본 기량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포지션에 따른 개성도 보여주고 있어 위협적인 공격 축구를 선보일 수 있다. 토레스라는 원톱 공격수가 빠져도 이러한 공격력을 보일 수 있음이 놀라울 뿐이다.

스페인 11명의 멤버가 균형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해준 선수는 수비형 미드필더인 사비 알론소와 부스케츠였다. 스페인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볼을 쉽게 다루지만, 그 중에서도 이들은 볼을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높은 볼 점유율에 기여했다. 강한 압박 능력과 신속한 볼처리 능력, 양 풀백의 오버래핑 시 그 자리를 커버해주는 위치 선정 능력, 슈팅 능력 등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이상적이다.

이들의 패스는 사비에게 이어진다. 사비와 같이 게임메이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선수는 흔히 보기 힘들다. 다른 동료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예리하게 찔러주는 사비의 패스 능력 뿐만 아니라 독일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게 완벽한 패스가 가능할 때까지 볼을 키핑하는 드리블 능력도 인상적이었다.

사비는 사람의 발 아래로 주는 패스보다는 공간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효과적이다. 즉 사비가 빛을 발하는 경기는 동료들이 볼이 없을 때 좋은 움직임을 보인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날 경기에서는 이니에스타, 페드로 뿐만 아니라 양쪽 풀백인 라모스와 카프데빌라까지 오버래핑에 참여하면서 사비가 경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다.

스페인과 같은 유기적인 전술은 어떤 팀도 쉽게 따라할 수 없다. 11명의 선수가 모두 수준급의 기본기와 위치선정 능력, 기동력에 각 포지션에 맞는 특화된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백업 멤버들이 이들의 자리에 들어가도 위화감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본기를 갖춘 선수가 많은 다른 유럽팀이라도 해도 이러한 전술을 사용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이러한 움직임에 토레스라는 원톱 공격수까지 가세한다면 비야가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보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토레스가 없는데도 이 정도의 공격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스페인의 공격력이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1골밖에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은 상대방이 약간의 틈만 생겨도 이를 골로 연결짓는 능력이 뛰어난 팀인데 스페인이 이러한 허점을 보이지 않은 것이 패인이라 할 수 있다. 저돌적인 특성이 있는 뮐러가 있었다면 경기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로서는 미드필드 싸움에서 완벽하게 제압당했기에 본연의 플레이를 보여줄 수 없었다.

결승전서 만날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모두 점유율 축구를 추구하며 자신의 페이스로 경기를 끌어가는 팀이다. 네덜란드는 독일과는 다르게 로벤, 엘리아와 같이 돌파력있는 선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일방적인 경기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 앞서 개인적으로는 색깔이 확연하게 다른 브라질과 스페인의 대결을 기대했지만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격돌 또한 월드컵 결승전에 어울리는 수준 높은 게임이 될 것이다.

OSEN 해설위원(FC KHT 김희태축구센터 이사장, 전 대우 로얄스 및 아주대 명지대 감독)

김가람 인턴기자

더반(남아공)=송석인 객원기자 song@osen.co.kr

■필자 소개

김희태(57) 해설위원은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우 로얄스, 아주대, 명지대 감독을 거친 70년대 대표팀 풀백 출신으로 OSEN에서 월드컵 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김 위원은 아주대 감독 시절 서울기공의 안정환을 스카우트했고 명지대 사령탑으로 있을 때는 타 대학에서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성을 발굴해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키워낸 주역입니다. 일간스포츠에서 15년간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0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2006년 대회까지 모두 5차례의 월드컵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현재는 고향인 포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초중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