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충남 서산에 사는 학부모 A씨는 오후 6시 30분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에 다니는 당신 아들 ××를 데리고 있다. 살리고 싶으면 당장 300만원을 송금하라." 40대 중반 정도의 남성 목소리였다. 이어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이상한 아저씨들이랑 같이 있어요. 무서워요." 아들과 비슷한 목소리였다.

남성은 "10분 안에 송금하지 않으면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후 전화를 끊었다. A씨는 당장 남편에게 전화해 300만원을 입금하도록 하고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A씨는 학교로 확인 전화를 했다. 아들은 평소처럼 학교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있었다.

'자녀 납치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08년쯤 극성을 부리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올 상반기 들어 아동 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납치 빙자 보이스피싱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최근 우리 경찰서에만 한 달 3~4건씩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고, 일선 학교에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학부모 문의 전화가 늘어나고 있다.

납치 빙자 전화 기승

경찰청에 따르면, "자녀를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은 다른 종류의 보이스피싱보다 신고 건수는 적지만 성공률은 높은 편이다. 자녀 목소리까지 들려주면서 부모의 다급한 심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청 마약지능수사과 김현종 경위는 "범인이 자녀의 목소리라고 들려주지만 실제로는 전혀 똑같지 않다"며 "학부모들은 자녀 일이라면 순간적으로 굉장히 당황하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의 목소리로 오인하고 돈을 송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범인은 다른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중국인 조직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엔 중국인들이 보이스피싱 전화를 하다 보니 말투가 어눌했지만, 최근에는 중국인 조직에 유학생 등 한국인도 동참하기 때문에 더욱 판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자녀와 부모와의 연락부터 사전에 차단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B양(고1·서울 동대문)의 휴대폰에 '발신자표시금지' 전화가 와 받았더니 음악 소리만 한동안 들리다 뚝 끊겼다. 같은 전화가 10여통이나 걸려오자 B양은 휴대폰을 꺼버렸다. 30분 후 집으로 돌아가며 휴대폰을 켜자마자 집에서 전화가 왔다. B양이 전화기를 꺼둔 사이 집으로 "딸을 납치했으니 1500만원을 보내라"는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즉시 신고하고 정보유출 조심해야"

경찰청은 "'자녀 납치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으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근절이 가능하고, 만에 하나 실제 납치 전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녀의 휴대폰보다 학교로 먼저 전화하는 것이 유용하다. 경찰 관계자는 "학부모들은 당황하면 먼저 아이의 휴대폰에 전화하고 안 받으면 돈을 송금해버린다"며 "학교나 친한 친구한테 전화해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또 평소 자녀의 동선을 면밀히 파악하고, 본인 연락이 안 될 때 즉시 전화할 수 있는 친한 친구 연락처도 알아둬야 한다.

평소 개인 정보 유출에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학생들이 인터넷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에 신상 정보를 올리는 경우가 많아 이름과 연락처뿐 아니라 학교명, 가족 이름까지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