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1시 30분쯤 인천 남구 주안4동 모아저축은행 본점 사무실에 점심식사하러 나갔던 경영진이 황급히 들어섰다. 직원들로부터 저축은행 주식 5%(약 17만주)를 갖고 있는 주주(株主)인 전 검찰총장 신승남(66)씨가 행장실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저축은행 주식의 장외 거래가격은 주당 3만원으로, 신 전 총장 보유 지분 평가액은 5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는 이날 자기 주식을 6명에게 증여하는 명의개서(名義改書)를 하러 운전기사와 함께 저축은행을 찾았다. 명의개서란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주주명부를 고치는 것이다.
모아저축은행 관계자는 "신 전 총장이 운전기사를 비롯한 지인 6명에게 1주, 5주, 10주씩 주식을 증여했다는 서류를 보고 의아했다"며 "소수의 주식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사진행을 방해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총회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저축은행은 6월 말 결산 내용을 토대로 오는 8월 말 정기주총을 열 예정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왜 이러시느냐"고 묻자, 신씨는 "뻔하지 않으냐. (주총을) 방해하려 그런다"며 "이 은행 오너가 나한테 소송을 걸어왔는데 만약을 위해 나도 대비해야 할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저축은행측은 전했다.
소송은 저축은행 회장이 지난 5월 신씨가 이사로 돼 있는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 법인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낸 대여금 변제청구 소송을 말한다. 저축은행 회장은 "골프장 부지 매입 비용으로 빌려준 돈인데 골프장 법인이 이자는 물론 언제 어떻게 갚겠다는 설명도 없다"며 소송을 냈었다.
저축은행측은 신씨에게 "소송은 별개 문제이고, 명의개서는 절차상 안 된다"고 말했으나 신씨가 거세게 항의해 소동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저축은행측은 "대법원 판례가 명의개서는 주식을 받는 사람이 직접 방문하거나 위임장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돼 있어 함께 온 운전기사 말고는 명의개서를 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으나, 신씨가 계속 명의개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행장실에서 4시간 가까이 고성(高聲)이 흘러나왔고 결산 업무로 바빴던 직원들이 술렁였다고 한다.
직원들은 신씨가 "수백 명한테 1주씩 나눠줘서 끝까지 괴롭히겠다" "가만 놔두지 않겠다" "소송을 할 테니 법정에 설 각오를 해라" "감옥에 갈 준비하라"는 말까지 하고 서류를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전직 검찰총수라는 신분 때문에 직원들이 다들 공포감을 느끼고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경찰에 영업방해로 신고하는 일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모아저축은행 노동조합 관계자는 "신 전 총장이 폭언과 협박을 하며 결산 업무로 바쁜 임직원들을 동요시키고 위해를 가하려 한 점은 주주 권리를 넘어선 행동"이라며 "고발장을 쓰고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민원을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 "명의개서를 하러 갔는데 (주식을 증여받는 본인이 안 오거나 위임장이 없으면 명의개서를) 안 해준다고 규정에도 없는 걸 얘기해서 법적으로 하겠다고 했을 뿐"이라며 "상법에도 없고 규정에도 없어 따졌다"고 해명했다.
2001~2002년 검찰총장을 지낸 신씨는 2002년 신씨 가족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사퇴한 뒤 특검에 의해 공무상 기밀누설, 직권남용죄 등으로 기소돼 2007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변호사법은 집행유예 기간이 지난 뒤 2년간 개업을 못하게 하고 있으나 신씨는 2007년 말에 사면복권돼 2008년 3월부터 변호사 활동을 재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