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이어 안방극장에도 금기가 허물어지고 있다. SBS주말극 '인생은 아름다워'(극본 김수현)는 동성애 묘사로 방영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 속 '동성애 코드'는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점점 더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극중 송창의(태섭)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 장면을 내보낸 뒤 갑론을박속에 시청자들의 관심도 증폭됐다. 케이블영화채널 OCN에서 앙코르 방송중인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는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 묘사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 노예들의 반란과 그 중심에 섰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HD무삭제판 전편이 연속 방송돼 더 화제가 됐다. 심야시간대임을 감안해도 TV 브라운관을 통해 등장한 파격적인 섹스묘사와 노예 검투사들의 잔혹한 살상 장면은 오랜 금기를 깬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스크린 작품 역시 진화하고 있다. 같은 소재라도 표현방식이나 농도가 깊고 넓어지는 분위기다. 장르를 불문하고 관념의 틀을 깨는 파격성 때문에 대중예술의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을 받고 있다. < 편집자주> |
동성애-파격 노출신…새 트렌드 자리매김? |
'해피투게더' '브로크백 마운틴' '왕의 남자' '쌍화점'… 성 정체성 깨기 위한 '꽃미남들의 몸부림' |
1.동성애 코드로 주목받은 영화
금기에 도전한 영화로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 대표적이다. 동성애 영화는 드라마보다 훨씬 많이 제작됐다. 노출 수위도 꽤 높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서 눈요깃거리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고 있다. '차별없는 사랑'으로서의 인권, 성적 취향이 다를 뿐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 대부분 사회적 금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금기를 깨기 위해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몸짓들을 심도있게 다룬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동성애 영화도 적지 않은 파문을 겪었다. 국내에서는 제50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해피투게더'가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이듬해인 1998년 개봉됐다.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동성애 코드가 전면에 드러난 '왕의 남자'(2006)는 1230만 관객을 동원하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남자 배우의 딥키스 장면이 여과없이 노출된 '쌍화점'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동성애, 이성애가 마구잡이로 섞여있는 '숏버스'같은 영화도 개봉됐다.
동성애 영화는 동성애자들의 사랑 자체보다 그들이 성적 소수자로서 사회 안에서 겪는 고통과 인간적 고뇌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성애 영화로는 '브로크백 마운틴'(감독 이안ㆍ2005)을 들 수 있다. 양떼 방목장에서 만난 게이 카우보이 에니스와 잭의 20년에 걸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에니스와 잭은 각자 결혼해 살면서 4년만에 재회, 방목장에서 느낀 낯선 감정의 실체를 재확인하고, 이후 1년에 한두번 씩 만나 사랑을 나눈다. 여자와 결혼해 사는 두 동성애자 남자들의 일생에 걸친 애틋한 사랑과 고뇌가 뭉클한 감동을 안겨줬다. 2006년 골든글로브 4관왕, 아카데미상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등을 휩쓸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해피투게더'(감독 왕가위ㆍ1998)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원제 '춘광사설'은 구름 사이로 아주 잠시 비치는 봄 햇살이라는 뜻.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남성 동성애자의 지독한 사랑 얘기다. 이기적인 보영과 포용하는 아휘의 감정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호평받았다. 떠나간 애인의 옷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국영의 연기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토탈 이클립스'(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ㆍ1995)는 19세기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의 사랑, 베를렌느의 아내가 개입된 갈등을 그린다.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화면 전체에 넘실거린다. 랭보의 문학적 천재성보다 그의 자유분방한 사랑과 영혼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상영중인 '싱글맨'은 동성애자인 영국인 대학교수가 16년간 함께 한 파트너를 잃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거미여인의 키스', '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 '아이다호', '필라델피아' 등에도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사회의 편견과 금기에 과감하게 도전한 동성애자의 삶을 그린 영화로는 '밀크'(감독 구스 반 산트ㆍ2010)가 눈에 띈다. '밀크'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최초로 미국 시의원에 당선된 실존 인물 하비 밀크의 삶을 소재로 한다.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인권운동가,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밀크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린다. 연기파 배우 숀펜은 주인공 밀크로 출연, 지난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로드무비'(감독 김인식ㆍ2002)가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대중영화로 꼽힌다. 한 남자(정찬)를 사랑하는 동성애자(황정민)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서린)의 엇갈린 삼각관계를 그린 이색 멜로물이다. 정찬과 황정민의 동성애 장면이 꽤 사실적으로 묘사됐지만, 관객은 3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김인식 감독은 "센세이셔널한 이슈가 아니라 사랑을 하는 개인의 감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 '소년, 소년을 만나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도 동성애를 직,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동성애 영화에 꽃미남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출연을 꺼릴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 '해피투게더'의 장국영과 양조위, '토탈 이클립스'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벨벳 골드마인'의 이안 맥그리거 등이 대표적이다. 장국영은 첸 카이커 감독의 제4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1993)에서도 동성애자 역을 맡았다. 국내 배우 중에서는 '왕의 남자' 인기의 불씨가 된 이준기, '쌍화점'의 조인성과 주진모, '후회하지 않아'의 김남길,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김재욱이 동성애자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2.'스파르타쿠스' 등 스릴러물도 진화?
검투사들의 결투 장면에서 목이나 사지가 여지없이 절단된다. 칼로 가른 배에서는 내장이 땅바닥에 쏟아진다. 시뻘건 피가 흙바닥을 물들인다.
미국드라마 '스파르타쿠스'< 사진>에 등장하는 잔혹한 액션 장면들이다. 게다가 남성의 성기나 여성의 체모, 적나라한 성관계 장면 등은 웬만큼 선정적인 영화 수준을 뛰어넘는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을 모두 버무려놓은 듯한 이 드라마는 국내 케이블 TV 사상 최고인 5.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례없는 인기와 함께 시청자들의 재방요구가 거세지면서 현재 앙코르 방송이 진행중이다.
이 드라마를 수입한 OCN측에서도 예상을 뛰어넘는 대성공에 깜짝 놀랐다. 흥행 돌풍에 놀란 다른 외주제작사 관계사들의 문의 전화도 빗발쳤다는 후문이다.
실제로는 방송 이전에 이미 흥행이 예고됐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터넷 영화 사이트를 통해 폭발적인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100% 세트촬영에 배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했다. 별다른 제작비를 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엄청난 성공을 했다.
OCN측은 이유에 대해 '완벽하게 구성된 스토리와 감정이입이 가능한 등장인물들의 설정' 때문이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실은 기존 드라마의 수위를 한단계 뛰어넘은 '잔혹성'과 '선정성' 때문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철저하게 오락용으로 제작됐다는 의미다.
물론 이 두가지가 인기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력이나 피가 튀는 장면에선 정지화면처럼 보여주는 편집기술, 효과적인 CG 사용도 제법 거들었다.
OCN 조율기 PD는 "로마시대의 검투 장면이나 성문화를 보다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 시청자들이 실제 그 시대를 체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기존 드라마에 비해 파격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개연성 없이 단지 '선정성'만을 위한 자극적 영상을 넣은 것이 아니라 시청등급에 맞는 성인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잔혹성만 따지자면, 한계가 있는 안방 드라마보다는 국내 영화에서 실험성 짙은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나지홍 감독의 2008년 데뷔작인 '추격자'는 망치와 정, 시뻘건 피를 등장시켜 잔혹 스릴러의 가능성을 열었다. 올초 개봉한 김형준 감독의 '용서는 없다'는 근래 나온 한국 상업영화중 가장 잔혹하다는 평을 얻었다. 부검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절단된 여성 신체를 거리낌없이 노출한다.
올 하반기에도 유명 감독들의 잔혹 스릴러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악마를 보았다'는 국내 영화사상 '가장 잔혹한 영화가 될 것'이란 소문이 벌써부터 나돌고 있다. 나홍진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황해' 역시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폭력성을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감독의 스타일이 다시 한번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수위높은 잔혹 스릴러의 잇따른 등장은 수용자층의 정서와 관련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자극의 역치(외부적인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높아지면서 선정성에 대한 기대치도 동반 상승하기 때문이라는 것.
동아방송 예술대학 영상제작과 성준기 교수는 "어릴 때부터 영상문화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은 예술성이나 메시지보다는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 영상 미디어를 즐긴다"며 "너무 심해져 자정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수위도 높아지고, 추세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3.갈수록 높아지는 노출 수위
'여주인공 성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행으로 귀가 멀어버린 노처녀다. 아버지의 폭행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고 오빠마저 잃게 했지만, 치매에 걸린 늙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한 채 지루하고 숨막히는 일상을 반복한다. 어느 날 성재는 아버지를 목욕시키면서 아버지의 성기를 만져 발기시킨다. 또 자신은 알몸으로 자위하며 억눌린 감정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2009년 10월 29일, 큰 화제 속에 개봉된 영화 '저녁의 게임'의 일부 내용과 장면이다. '저녁의 게임'은 작가 오정희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최위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성재가 아버지의 성기를 만져 발기시키는 장면, 또 성재가 알몸으로 자위하는 장면에서 성기를 클로즈업해 외설 시비를 일으켰고, 심의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만 붙은 채 이 장면이 무삭제 통과되면서 재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종전의 여러 '뜨거운 작품들'과 비교해도 그런 파격이 없었다. 심의 잣대가 특히나 까다로운 근친간 유사 성행위와 성기노출이 동시에 시도됐고, 그 시도가 '예술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면서 무삭제라는 전무한 판정을 받아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파격이란 수식어를 붙여 모자랄 게 없다. 여기서는 송강호라는 손꼽히는 배우의 성기노출이 감행됐다는 점에서 더욱 큰 화제가 됐다. 송강호는 여신도를 강간하려다 다급하게 끌려나오는 장면에서 성기를 고스란히 노출했는데 이 또한 심의의 벽을 넘어섰다. 거꾸로 강간 시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송강호의 급박한 상황은 연기력으로 처리해도 그만이었다. 굳이 성기까지 내놓지 않아도 표현에 아무 문제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애써 그 장면을 만들어냄으로써 새삼스럽게 주목받은 게 박 감독의 이슈만들기 재주와 송강호의 프로정신이었다.
지난달 제6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임상수 감독의 '하녀'도 파격적인 성행위 장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일명 구강섹스였다. 와인병을 들고 전도연의 방으로 찾아간 이정재가 관객을 등진 채 나신으로 서 있고, 전도연이 입으로 이정재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애무하는 과감한 장면이었다.
2001년에 개봉된 '썸머타임'은 두 가지 파격적인 측면에서 화제가 됐다. 90년대 인기 혼성그룹 룰라의 멤버 김지현의 연기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고, 지나치게 김지현의 노출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한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여러 차례의 성행위 장면이야 기존의 틀이나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김지현이 침대에 누워 하체를 스트레칭하는 장면은 파격과 적나라함 그 자체였다. 속옷만 입고 누운 김지현의 은밀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카메라 앵글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소재의 파격으로 화제가 된 작품도 많다.
우선은 최근 들어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다. 영화 '왕의 남자', '쌍화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개인의 취향'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야 많지만 특히 '쌍화점'과 '인생은 아름다워'는 노골적인 표현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쌍화점'에서는 조인성과 주진모 두 남자 주인공이 상상을 초월하는 진한 키스신으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맨정신으로는 불가능해 양주 마시고 촬영에 임했다"는 고백을 통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의 파격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동성애 주인공으로 송창의와 이상우를 내세운 '인생은 아름다워'도 브라운관이 허용하는 한계치를 넘나들며 시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과연 사랑이라는 소재가 어디까지 틀을 허물고 진화할지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파격과 노출이 거침없이 감행되는 건 연극 무대도 예외가 아니다.
94년 영국 작가 존 파울즈의 원작 '콜렉터'를 각색한 '미란다'가 막을 올리면서 일명 '누드연극'의 막도 올랐다.
그 후로도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누드연극이 꼬리를 물었고, 작년에는 공연시간 70분 중 60여분간 알몸 연기가 이어진 '논쟁'이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 극작가 겸 소설가 피에르 드 마리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역시 작년에 막이 오른 '교수와 여제자' 또한 여주인공 최재경의 전라 연기로 화제가 됐으며, 지금은 지방 공연을 진행중이다.
1989년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최근 연극으로 재탄생한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는 이파니의 등장과 조수정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고 있다.
연출가들은 "작품에 충실할 수 있다면 노출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애써 작품성을 강조하지만, 노출과 행위가 갈수록 과감해지고 소재들 또한 파격의 정도가 끝없이 짙어진다는 점에서 흥행을 염두에 둔 제작진의 고의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 최재성 기자 kkachi@sportschosun.com>
4.금기의 역사와 인물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화가 있다. 금기의 속성을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훔친다는 것은, 금기를 깨는 것이다. 도둑질은 성경을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종교, 모든 공동체에서 금지하는 행위다.
이 영화 제목은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을 어기는 행위를 은근히 부추긴다. 훔친 대상이 예사롭지 않다. 사과는 흔히 여성 성기에 비유된다. '훔친 사과가...'는 불륜의 쾌감이 더 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도둑질과 성이라는 두 개의 금기를 동시에 깬다.
금기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돼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한다. 인류 최초의 금기다. 금기의 역사는, 반대로 금기 파괴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금기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다.
금기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 금기를 깨고자 하는 욕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수많은 신화가 이를 증명한다. 서양문화의 원형인 그리스 로마 신화가 대표적이다. 현실에서는 감옥에 가야 마땅한 '금지된 행위'들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성과 관련된 금기가 가장 많다. 인류가 신화를 통해 욕망을 대리충족한 측면이 있다.
최고 신 제우스는 카사노바의 원조, 불륜의 황제다. 유부남이면서도 마음에 드는 여신이 있으면 처녀든 유부녀든 가리지 않고 불륜을 저지른다. 그로 인해 상대 여신들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처벌을 받아 고통받는다. 헤라와의 결혼 자체가 현실에서는 금기를 깨는 행위였다. 제우스와 헤라는 오누이였으니, 근친상간을 저지른 셈이다.
대표적인 금기인 근친상간이 등장하는 신화, 예술의 역사는 깊다. 그리스 최고 비극으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은 어머니와 동침한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리고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는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 등장한다. 둘 다 모르고 저지른 행위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끝난다. 중국과 일본 신화에도 오누이가 결혼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들은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자손을 낳거나, 새로운 땅을 창조한다.
우리나라 달래고개 설화도 근친상간의 금기를 담고 있다. 오누이가 길을 가다가 비를 맞아 흠뻑 젖는다. 남동생이 맨살을 드러낸 누이를 보고 욕정을 느낀다. 이에 죄책감을 느낀 남동생은 자신의 성기를 돌로 찧다가 죽는다. 누이는 뒤늦게 죽은 동생을 발견하고 "달래나 보지"라고 탄식한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는 전국에 널리 퍼져있다. 이는 근친상간의 욕망이 그만큼 보편적이고 강력해서 금기로 설정했다는 뜻이다.
금기를 깨는 것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예술가들의 자유분방한 성정이 금기를 허무는데 앞장선 것이다. 당대에는 외설물로 취급받았지만, 나중에는 세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도 많다. 영국 작가 D. H 로렌스가 1928년 발표한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발표 당시 노골적인 내용 때문에 출판이 거부되고 외설물 단속에 걸렸지만, 현재는 세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로도 제작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들 친구와의 사랑('졸업'), 시아버지와 예비 며느리의 사랑('데미지'), 소녀를 사랑한 교수('롤리타') 등 파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은 소설, 영화도 금기에 도전한 작품들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금기에 도전한 경우가 많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71세 때 18세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를 만나 사랑의 불꽃을 태웠고, '신곡'의 단테가 첫눈에 반해 작품에도 등장시켰던 베아트리체는 겨우 9세였다. 대표적인 금기였던 동성애도 역사가 깊다. 뜻밖의 동성애자도 부지기수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동화작가의 대명사 안데르센,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등도 동성애자로 유명하다.
<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
Tip.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소견?
'동성애는 병이다? 병이 아니다?'
동성애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동성뿐 아니라 이성애를 겸하기도 하고, 이성애자가 일시적으로 동성애적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동성애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해부학적인 성에 대한 불만이 없다. 잠재성 동성애는 인격에 동성애 경향이 있고, 동성애 행위에 대한 공상들이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다.
1973년 미국의 정신 의학회에서는 다수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문제없이 활동하고 있어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보지 않게 됐다. 이어 1980년대에 동성애는 정신의학적 진단 분류(DSM)에서 삭제됐다.
즉 동성애를 병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성적 지남(sexual orientation)의 문제 또는 다른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로 보게 된 것이다. 한때 불안, 우울, 죄의식, 자기 증오, 수치와 같은 적응 문제 등이 있는 자아이질성 동성애(ego-dystonic homosexuality)라는 정신질환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이 마저도 적응 장애나 우울증으로 고려하고 있다.
프로이드 역시 정신성적 발달(어린이들이 성적으로 발달하는 과정) 정체와 거세공포 등을 원인으로 봤지만, 병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동성애는 대부분 본인이 치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치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원할 경우 치료가 시행되기도 한다. 치료는 동성애 장면을 보게한 뒤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전기자극으로 고통을 주는 회피 조건화 등이 사용된다. 시기는 상대적으로 젊고, 이성에게 성적 흥분을 느낀 적이 있을 때, 치료 동기가 강할 때 좋다.
자아이질성 동성애에 대해서는 불안과 수치, 죄책감, 우울증을 느끼지 않고 동성애를 갖도록 돕는 게 치료방법의 하나다.
사랑샘터의 정신과 김태훈 원장은 '동성애의 성공적인 해결법'에 대해 "자신의 성적 지남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인 모든 면에서 조화시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외부세계에 자신의 성적 지남을 노출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