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이다정 기자] KBS 2TV '수상한 삼형제(이하 '수삼')'가 종영한지 2주 째. 푹 쉬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준혁은 쌓인 피로를 미처 풀지 못한 모습이었다. 삼형제 중 셋째 김이상 역할을 맡아 극 초반 주어영(오지은)과 밀고 당기는 연애로 상승세를 가져온 후 10달 여간 달려온 후유증인가 했더니, "드라마가 끝나고 미국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꼬여 취소됐다"고 한숨을 푹 쉰다. 김이상으로 끌어온 인기 여파로 인해 차기작 미팅이 한창이라고. 이준혁은 아쉬운 기색을 보이다가도 "좋은 역할이 들어오는 것을 놓칠 수는 없지 않나. 아무래도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것 같다"며 의연함을 보였다.
▶'수삼' 주어영, 와이프였지만 정말 화도 났다
2009년 8월에 첫 촬영을 시작했으니 '수삼'으로만 꼬박 10개월을 보냈다. "수능 본 기분일 것 같다"고 묻자 후련한 표정을 짓는다.
"시원하면서도 허탈하다. 스케줄이 꼬여서 영화 카메오 출연 빼고는 아무것도 못 했다(웃음). 수능이 끝난 느낌이기는 한데, 숙제가 새로 생긴 기분이다. 여지껏 항상 작품이 끝나고 바로 일을 들어가서인지, 지금도 새로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이 있다. 최근에는 월드컵을 보면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게 낙이었다. 하하."
20대 중반의 청년이 결혼한 유부남을 연기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극중 주어영은 '열혈 구애'로 얻은 와이프지만, 연기하면서 마음으로 못 받아들일 때도 생겼다. 하루는 대본을 보다 정말 화가 나 열을 삭힌 적도 있었다고.
"남자 입장에서 어영이를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주변을 살펴 보니 실제로 어영이보다 더한 사람들이 있었다. 능력이 있고 자존심은 강하지만, 표현을 잘 못하는 여자들이 어영이랑 비슷하더라. 그래서 점점 이해를 하게 됐다. 사실 이상 역도 내 실제 모습과 근접하지는 않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이상과 달리 나는 자유방임으로 자라서(웃음). 나는 평소 이성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잘 못하는데, 이상이 어영에게 진심어린 대시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 방법이 맞구나' 싶었다."
어영과 크고작은 갈등을 봉합하며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6개월여 동안은 일주일에 7일 촬영할 때도 많았다. 주말극이지만 미니시리즈 스케줄과 맞먹었다고. 잠도 못 자고, 피부에도 트러블이 생겨 고생 꽤나 했다.
"이상하게 어영이와 야외에서 촬영할 때는 항상 날씨가 안 좋았다. 한파에 폭설, 비까지 내리니 야외 스태프가 '악연 아니냐'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수삼'을 촬영하며 자신감과 여유가 많이 생겼다. 큰 역할이 부담됐었지만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나이보다 들어보인다고? "중학교 때부터…"
이준혁은 실제 스물일곱의 '한창 나이'지만, '수삼'의 김이상은 실제 나이보다 한참(?) 많아보이기도 했다. "주말 가족극의 이미지 때문인가"라고 물었더니 "원래 나이가 좀 많아 보인다"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 많아 보인다는 얘기는 어딜 가든 중학교 때부터 들었다(웃음). '수삼' 촬영 당시 식당 이모들 사이에서 '욘사마 급' 인기였다. 하하. 신경쓰는 부분이라기보다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래보다 형 같아 보인다고 어린 역할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역할 폭이 넓어진다고 본다."
대화하는 내내 개구진 표정과 농담이 스치는 모습이 김이상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풍겼다. 실제로는 스마트폰 마니아에, 하나에 꽃히면 끝까지 파고야 마는 열정적인 남자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것이 신조다. 최근에는 음악에 꽃혀서 CD를 많이 샀는데, 사운드 장비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옆에서 듣던 매니저가 '그런 성격 때문에 NG도 잘 안 낸다'고 귀띔했다.) 사실 잠을 줄이더라도 맡은 건 다 하고 자야하는 성격이라 대본도 다 외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에는 프로페셔널 하고 싶고, 현장에서 욕 먹기도 싫다. 일을 너무 좋아해서(웃음). 스스로도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2007년 SBS '조강지처클럽'으로 데뷔해 쉬지 않고 달려온 3년 반 동안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 SBS '스타의 연인' '시티홀' 등에 출연했다. 최지우 송혜교 현빈 차승원 김선아 등 현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 걸출한 한류스타, 혹은 최고의 연기력으로 평가받는 이들이다. 배울 점도 느낀 점도 많았다.
"상대 배우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예민한 현장에서 한 번도 얼굴을 붉혔던 적이 없다.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승원 선배는 준비성이 철저한 완벽주의자라 '시티홀' 당시 어려운 정치 용어를 한 번의 NG 없이 풀어내면서도 항상 밝은 모습이라 '롤 모델'로 생각했다. '수삼'의 김희정 선배 역시 22페이지 대본을 받았는데 NG 없이 마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선배들을 보며 나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여자친구 사귀고 싶은데, 일 욕심이…"
이준혁은 데뷔 이래 3개월 이상 쉰 적이 없다. 연기자로 활동하면서부터 연애할 생각은 자연스레 접게 됐다. "한창 청춘인데 연애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또 한 번 한숨을 쉰다.
"일이 지칠 때는 여자친구를 정말 만나고 싶은데, 계속 일이 들어오니 말이다(웃음). 아직 원하는 자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은 연애보다, 괜찮은 역할이 들어오면 잡고 싶다. 옆에서 지켜본 대스타들 모두 오랜 인고를 겪고 잘 된 만큼, 나 역시 한 단계 더 올라갈 날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한류 스타들과 작품을 해온 만큼 이준혁을 알아보는 일본 팬들도 많다. 한인 TV가 방송되는 오사카 지역에서의 반응이 특히 괜찮다고. 그러나 '이준혁'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려면 갈 길이 좀 더 남았다.
"'수삼'이 끝난 지금은 연기를 3~4년 해오며 부족했던 점을 채워나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좋은 작품과 멋진 캐릭터 제의가 오면 당장이라도 욕심 내서 하고 싶다. 시청률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연기를 잘 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 2010년의 남은 반 년 동안은 '이준혁'하면 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해를 만들겠다."
'열혈 경찰' 김이상 역을 멋지게 끝냈으니 이제는 정반대의 역할을 해볼 차례다. 하고 싶은 역할을 묻자 "누가 문 좀 열어주면 좋겠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항상 자수성가한 역할만 해와서 말이다. '수삼' 때도 그렇고 극 중에서 운전만 많이 했다(웃음). 이제는 천진난만한 부잣집 아들 역을 맡아서 누군가 운전도 해주고, 차 문도 좀 열어주면 좋겠다. 어두운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말이다. 욕심이 너무 많나? 하하."
<anbie@sportschosun.com, 사진=홍찬일 기자 hongi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