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4일 미인계를 동원해 재력가를 유혹한 뒤 사기도박을 벌여 거액을 뜯어낸 혐의로 고모(54)씨 등 6명을 구속했다. 연합뉴스 5월 24일
인천의 음식점에 남자 넷과 여자 셋이 모였다. 오리탕에 낮술까지 한잔 한 구모(43)씨가 말했다. "오늘은 크게 한 판 따야지. 당신 요새 너무 잃고 있잖아!" 건설업자 이모(41)씨가 장단을 맞췄다. "한 판 시작해볼까?"
7명 가운데 넷이 포커의 일종인 '바둑이'를 시작했다. 한 사람당 5000만원씩 걸어, 판돈이 2억이나 됐다. 동그스름하고 앳된 얼굴의 이모(여·34)씨는 이씨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건설업자 이씨를 응원했다.
한참 노름에 열을 올릴 때 돌연 "꼼짝 마!"란 고함 소리와 함께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건설업자 이씨를 제외한 6명을 붙잡았다. 순간 이씨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설업자 이씨는 100억원대 재력가였다. 그가 사기도박의 수렁에 빠진 건 올해 1월 고향 선배 구씨를 만나면서부터다. 구씨는 "당진에 호텔을 지으려 하는데 상담을 받고 싶다"며 식당으로 이씨를 불러냈다.
구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고모(54)씨, 박모(45)씨를 데려나왔다. 한참 밥을 먹는데 옆 자리에 여자 셋이 들어왔다. 둘은 40대 중반이었고 이모씨는 30대였다. 키가 160㎝가량인 이씨는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다.
구씨가 옆의 여자들에게 "아줌마들, 여기도 셋이고 거기도 셋인데 소주나 한 잔 같이 할까?"라고 말했다. 함께 술을 마신 뒤 구씨가 "노래방 같이 가자"고 했지만 건설업자 이씨는 "바빠서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한 시간 뒤, 구씨는 건설업자 이씨에게 전화해 "노래방에 있으니 얼른 합류하라"고 했다. 이씨가 나타나자 7명은 함께 어울렸다. 경찰은 "건설업자 이씨가 젊은 여성 이씨와 첫날부터 입을 맞췄다"고 했다.
여자는 이씨에게 "서울에 살고 일본 유학을 다녀왔으며 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이씨는 가끔 서울로 가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했다.
2월이 되고 이씨와 나머지 6명은 태안에 모였다. 회를 먹은 이들은 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심한데 카드놀이나 해볼까?" 구씨의 제안에 카드가 시작됐다. 40대 여자 두명과 이씨 그리고 박모(45)씨가 게임에 참여했다.
처음에 300만원을 잃은 이씨는 현금이 없자 옆에 있던 고모(55)씨에게 돈을 꿨다. 고씨는 마침 5000만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수표로 갖고 있었다. 이 돈을 빌려 도박을 하던 이씨는 3시간 만에 5000만원을 날렸다.
이렇게 이들은 2월에서 3월 사이 경기도 양평에 있는 민물고기집과 인천의 식당에서 만나 도박을 했다. 이씨가 총 세 차례 도박을 해 잃은 돈은 1억5000만원이나 됐다. 계속 돈을 잃은 이씨가 결국 경찰을 찾았다.
이씨에게 판을 벌이게 한 뒤 현장을 급습한 충남청 양철민 광수대장의 설명은 이렇다. "이씨 등 4명이 도박 중이었고 여자 이씨와 구씨는 구경했다. 나머지 한명인 고씨는 다른 방에서 '작업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작업카드'란 상대는 지고 자기 편은 이기도록 패를 설정해 놓은 카드다.
경찰 수사 결과 6명은 사기도박단이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꽃뱀'인 30대 여자 이씨다. 경찰이 "사람들이 쉽게 넘어갈 정도의 미모를 가졌다"는 이씨는 피해자 이씨를 꾀어 계속해서 도박판에 끌어들였다. 마치 애인처럼 행동해 이씨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작업카드를 만들어 온 고씨가 카드를 바꿔치기할 때는 꽃뱀 이씨가 피해자 목을 붙잡고 키스를 퍼부어 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피해자가 마시는 음료수에다 환각제를 넣고 먹여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경찰이 붙잡힌 일당의 기록을 조회해보니 이미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저질러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서 수배가 된 상태였다. 고씨가 이씨에게 빌려준 수표도 진짜 돈이 아닌 '위조 수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