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태권도의 중심, 국기원에 큰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국기원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기원은 ‘태권도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하 태권도진흥법)’에 따라 지난 5월 28일 특수법인으로서 법인설립등기를 완료하고, 이사장(김주훈)과 원장(강원식)을 포함한 19인의 이사로 본격적인 체제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구 국기원(재단법인)은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사라진 상태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면 구 국기원(재단법인 국기원)의 정체성이 신 국기원(특수법인 국기원)으로 이전되는 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재)국기원의 이승완 원장이다. 이승완 원장은 국기원정상화추진위원장을 거쳐 국기원 이사장과 원장의 자리에 오르며 사실상 국기원을 ‘장악’한 인물이다. 이 원장에 대한 평가는 사람과 입장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간다. 그만큼 이해하기가 쉬운 인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승완. 그는 어떤 인물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특수법인 국기원이 출범한 5월 말, 국기원에서 이승완 원장을 만났다.(재단법인 국기원은 법률적인 효력을 잃어버린 상태이고 특수법인 국기원이 발족한 상황이므로 이승완 원장을 전 원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를 수 있으나 이글이 쓰여지는 현재시점에서는 아직까지 국기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것이 아니므로 이승완 원장을 ‘전 원장’이 아닌 ‘원장’으로 표기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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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신청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것”
우선, 현재 시점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는 과연 이승완 원장과 그를 따르는 인물들이 특수법인 국기원이 재단법인 국기원의 업무를 승계하고 새로운 임원들이 국기원에 들어서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 적어도 일부에서 우려하는 물리적인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태권도진흥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소송과 법률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진행 중이다. 이 가처분신청의 결과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승완 원장의 이 같은 말은 적어도 (특)국기원의 원장과 부원장이 국기원에 출근하거나 업무를 보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특수법인 국기원의 강원식 원장이 선임된 후 국기원을 찾아 이승완 원장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우려할 만한 불편한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재)국기원과 (특)국기원의 문제는 이승완 원장과 문화체육관광부의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승완 원장의 문체부에 대한 불신, 역으로 이승완 원장에 대한 문체부의 불신의 골은 깊었다. 이 불신의 골의 시작은 어디일까?
“작년 10월 8일, 문체부의 차관, 담당국장, 과장과 내가 만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국기원의 새로운 정관과 관련해 △임원에 대해 공무원법 적용한다 △원장은 보고 사항, 이사장은 승인 사항으로 한다 △문체부의 주도로 사표를 받았던 이사들의 임기는 승계한다 △원장은 태권도인으로 한다 △사무총장제를 신설해 행정전문가를 영입한다 △국기원에서의 태권도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등의 내용을 합의하고 사진까지 찍고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난 13일 경찰청에서 나에 대해 영장이 청구됐다. 문체부에서는 자신들과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오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승완 원장에 대한 영장은 협의없음으로 기각됐다. 그러나 이승완 원장의 감정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다.
“영장이 기각된 후 김대기 차관을 26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무조건 정관을 통과시켜야한다. 최후 통첩이다’ 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 억울하게 영장이 청구돼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해를 본 나에 대해 인간적으로 위로나 사과의 말이 먼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특히 11월 4일 문체부가 배표한 보도자료는 명예훼손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체부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문체부가 2009년 11월 4일 배포한 ‘국기원 정상화 위해 태권도진흥법 개정 검토’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국기원)파행의 원인은 법정법인으로서 최소한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일반 법정법인들이 채택하고 있는 ‘임원에 대한 결격사유 조항(국가공무원법 제33조* 수준)’을 국기원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현행 이사진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기원 파행의 문제가 이승완 원장을 비롯한 (재)국기원 이사들에게 있다는 문체부의 시각은 같은 해 3월 13일 신재민 차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신 차관은 “(이승완 원장은)과거 권력기관과 조직폭력배가 결탁한 대표적 정치테러 사건(용팔이사건)의 중심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국기원의 중심 인물로 나서야 하는지 태권도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조폭출신이다’라는 말은 이승완 원장을 따라다니는 꼬리표와 같다. 이것은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어디까지 인정하는 것일까?
“우선 나는 조직의 힘을 이용해 약한 사람을 괴롭히거나 하는 행동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과거에 건달세계와 관련을 맺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건달이기 이전에 국가대표까지 역임한 경력이 있으며 한창 때에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태권도인이다.”
이승완 원장의 젊었을 때 태권도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는 이야기는 기자도 들은 적이 여러 번 있다. 특히 겨루기에 강했다. 이승완 원장이 현재도 지도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데, 지도관은 다른 관에 비해 경기에 강한 면이 있었다는 증언을 당시 활동했던 원로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이 원장이 태권도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른바 조직폭력의 세계와도 관련이 있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사실 태권도와 건달의 간격은, 특히 그것이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가까울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그것이 6~70년대 였다면 말이다. 당시에는 ‘태권도 배우면 깡패된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승완 원장의 과거가 미화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용팔이 사건’이란 무엇인가?
용팔이 사건은 1987년 4월 23일 통일민주당 창당과정에서 150여 명의 폭력배들이 난입해 사람들을 폭행하고 행사를 방해한 사건이다. 이들 폭력배들을 동원한 인물 중 하나인 김용남씨의 별명을 따서 이 사건은 용팔이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이 용팔이의 배후에 이승완 원장이 있었고 그 배후에는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있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간단한 전말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단순한 폭력사건이 아니라 정부기관이 개입한 대한민국정치사의 치부로 여겨질만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승완 원장은 “이 사건 당시 나는 리버사이드호텔에 있었는데, (‘용팔이’ 김용남씨가 현장에 가는 것을) 방조는 했으며 징역형을 받았으나 곧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입장에서는 유쾌한 기억이 아닐 터이므로 더 이상 자세하게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원장의 과거를 캐자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이 원장은 “90년대 이후로는 그쪽 세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승완 원장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로, 국기원 문제가 자신 때문에 시끄럽다는 시각이다.
“엄운규 원장 시절, 국기원이 시끄러워지게 된 시작은 이근창 당시 사무처장과 임윤택 서울시태권도협회장간의 갈등이 시작이다. 이들의 갈등이 점점 커지면서 국기원 대 서울시협회, 엄운규 대 이승완 하는 식으로 보였던 것 뿐이다. 내가 국기원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이러한 갈등의 당사자인 임윤택 회장과 이근창 처장을 화해시킨 일이다.”
이승완 원장이 국기원의 실권을 잡기 전, 이른바 ‘야당’이던 시절에는 국기원 조직 내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였고, 문제있는 임직원들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국기원장이 된 후에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다.
“국기원장이 되고 나서 국기원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문제가 많았다. 쉽게 얘기해 일을 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근태도 엉망이었다. 그나마 내가 되고 나서 일하는 국기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바꾼 점도 있다. 그러나 6개월 남짓한 기간이 그러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또한 우리(국기원)의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파헤치고 직원을 징계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일하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승완 원장체제가 들어서고 난 후, 해외지부 설립 추진이나 대언론홍보 등의 면에서 확실히 활발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많다. 어찌되었건 이 원장에게 시간이 많았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아직 문제가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국기원장과 이사장, 문체부에 하고 싶은 말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
"태권도인으로서 국기원장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길지 않지만 국기원장이라는 영예도 누렸다. 더 이상 자리에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되었건 앞으로 국기원을 이끌고 갈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3가지가 있다. △태권도 100년 대계를 내다볼 것 △파벌을 조장하지 말 것 △태권도의 자율권을 보장할 것 등 이다. 또 한 아직 국기원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만큼 법률적인 결정(가처분신청)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만약 법률적인 부분에 어긋나는 무리수를 둔다면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태권도인으로서 적어도 태권도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했다고 자부한다. 마치 내가 없어지면 태권도가 조용해질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한번 해 보면 알 것이다. 나니까 이만큼이라도 버텼다는 말도 있다. 다른 면은 둘째 치더라도 태권도 통합에 내가 누구보다 앞장섰다는 점 만큼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승완 원장과의 인터뷰는 쉽지가 않다. 만나기가 어렵다기 보다는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써야하는 입장에서 볼 때, 핵심을 잡아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승완 원장은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이 세계에서 만난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다. 논리적인 말과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문제를 만나면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점이 그를 국기원장에 까지 이르게 했을 것이다.
이승완 원장과는 태권도기자로서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이승완 원장의 생각이나 행동은 기자의 것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 이승완’에 대해서는 남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승완 원장의 공과는 차치하고 태권도계의 실제적인 원로로서 예우를 받기를 기대한다.
박성진 태권도조선 기자 kaku6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