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음악의 한계, 회의감 들었죠."

럼블피쉬가 돌아왔다. 이번엔 네 명이 아닌 최진이 혼자의 럼블피쉬다. 2004년 '예감 좋은 날'로 데뷔한 뒤 꾸준한 인기를 이어왔던 이들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 것. 왜 굳이 외로운 솔로의 길을 선택했을까?

최진이는 "밴드음악의 한계를 느꼈다. 그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시작은 인디밴드였지만 결국 럼블피쉬는 대중가수다. 대중이 원하고 찾는 음악을 하기 위해 다른 작곡가의 곡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는 "밴드라는 이미지 때문에 선입견이 생겼던 것 같다. '왜 곡을 받느냐는 비난이 많았다'며 인디때부터 우리를 좋아해주시던 분들은 '변했다'고 질타하시기도 했고 우리는 대중에 맞춰야했다. 딜레마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외부의 비난은 이렇게 저렇게 이겨나갈 수 있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해피한 밴드'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린 럼블피쉬였기 때문에 언제나 밝은 노래만 불러야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무대 위에선 웃어야 했다. 실제로 '으랏차차'를 부르다 가식적인 상황이 싫어 운 적도 있다고.

여기에 '비와 당신' 이후 선호하는 음악 스타일에 변화가 찾아왔다. 발라드적 창법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밴드 음악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최진이는 "원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있어서 즐거운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들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좀더 여성스럽고 애절한 창법을 구사하고 싶었는데 밴드에서는 파워풀한 모습만을 기대해 갈등했다"고 말했다.

밴드 정체성에 대한 고민, 본인 음악스타일의 변화 등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밴드활동을 강행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밴드를 버릴 수도 없었다. 처음엔 럼블피쉬로 활동을 하면서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등 어떻게든 병행해보려 했지만 한계에 달했다.

결국 솔로로 활동하자고 결심했다. 마음이 편할거라 생각했건만 또 다른 갈등이 생겼다. 럼블피쉬의 이미지를 계속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그 이름표를 떼어버릴 것인가가 문제였다.

"처음엔 기존 럼블피쉬 이미지를 완전히 깨버리려고 일렉음악을 하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너무 달라지면 대중에게 거부감만 줄 것 같았다. 장점을 살리고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절충점을 찾았다."

아무래도 출발점이 럼블피쉬였던만큼 쉽게 버릴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진이는 "앞으로도 럼블피쉬의 이미지를 나와 연계시켜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미니앨범 '아이 엠 미(I AM ME)'가 탄생했다. 특히 최진이는 직접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에도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힘들지 않았냐'는 말에 "회사에서 내 의견을 많이 수렴해주셔서 즐겁게 작업했다. 특히 작사는 항상 해왔던터라 괜찮았다. 주로 작사를 할 때 영화나 책에서도 영감을 얻고 무엇보다 KBS 2TV '사랑과 전쟁'을 보며 영감을 얻는다"며 웃었다. 절대 있을 것 같지 않은 내용도 많이 방송되기 때문에 색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타이틀곡 '어쩌지'는 최진이와 히트작곡가 김원이 공동 작사한 곡으로 헤어진 후의 심경을 노래했다. 목소리 자체에 물기가 묻어있는 듯 애절한 최진이의 보컬과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는 호소력을 표현하는 방법에 변화를 많이 줬다. 여가수답게 부드럽고 애절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그래도 녹음이 끝나고나니 좀 더 애절하고 여성스럽게 부를 수 있었을걸하는 후회가 든다"고 전했다.

당찬 변신을 감행한 최진이의 최종 목표는 '노래 잘하는 가수'다. '이미 노래 잘 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젓는다. 그는 "가수라면 노래 잘 한다는 말보다 더 큰 칭찬은 없을 것이다. 팬 뿐만이 아니라 누가 들어도 최진이 정말 노래 잘한다고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