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원래는 보험 용어였다. '모럴 해저드'. 보험에 들지 않았다면, 자동차도 더 조심해서 운전했을 것이고, 불이 나지 않도록 더 애썼을 것이다. 그런데 보험에 들었다는 방심(도덕적 해이) 때문에 자동차도 함부로 몰고, 화재 예방에도 신경을 덜 쓰게 됐다. 물론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책임은 있다.

투자회사가 남의 돈을 가지고 다소 위험이 크더라도 수익이 높다고 생각되는 곳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일종의 모럴 해저드라고 볼 수 있다. 원래는 그랬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고 불리는 모기지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아치웠던 미국골드만삭스에 대해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수사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주말 뉴욕 검찰이 미국의 8개 금융회사와 3개 신용평가회사에 소환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다. 혐의는 '사기(fraud)'다.

스탠다드앤푸어스·무디스·피치 같은 세계적 신용평가회사들은 금융사들이 내는 수백만 달러의 연회비(annual fees)로 먹고 살아왔는데, 신용평가사들이 이들 금융회사나 그들의 파생상품에 높은 신용등급을 주어서 투자자를 현혹시켰다는 것이다. 그 모기지 상품들이 사실은 거덜나기 직전인데도 최상급 신용평가인 '트리플 에이(AAA)'를 주었다는 것이 검찰의 추궁이다. '트리플 에이의 사기극'이라고 부르는 독설가도 있다.

그러나 뉴스위크의 파리드 자카리아 같은 이는 '내기(bet)'라는 말을 썼다. 가령 프로야구팀 뉴욕 양키스가 이길 것이라는 쪽에 돈을 거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마권 영업자(book maker)는 재빨리 "뉴욕 양키스가 질 것이라는 쪽에 돈 걸 사람 없소?" 하고 소리를 치게 돼 있다. 북 메이커의 역할을 한 골드만삭스가 '아바쿠스'란 CDO 상품 거래를 했을 때도 이치는 똑같다는 것이다. 누가 과연 모럴 해저드에 빠진 것인가. 수수료를 챙긴 골드만삭스인가. 아니면 과도한 이익을 탐내고 베팅을 했으나 결국 돈을 잃은 독일의 투자은행(IKB)인가.

보험가입자·금융기관·신용평가사만 모럴 해저드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도 국민도 모럴 해저드에 빠진다. 남유럽 사태처럼 7500억 유로에 해당하는 긴급 구제금융을 마련해주면, 이것이 마치 보험금을 지급해주는 것과 같아서 이웃나라에 모럴 해저드 현상이 나타난다.

근본 해결책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을 줄이고, 국민이 내야 하는 세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이 국민의 모럴 해저드다. 국민은 질 좋은 의료혜택, 촘촘하게 짜인 사회안전망,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공항, 누구에게든 꺾이지 않는 강한 군대를 원한다. 그리고 동시에 낮은 세금을 원한다. 데이비드 레온하트는 뉴욕타임스에서 그 점을 지적했다. 이것도 일종의 모럴 해저드다.

자신들이 낸 세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정부에 요구하는 일은 자각증세 없는 만성 질환이 돼 있다. 선거와 맞물린 정권은 무리를 하면서 빚을 냈고, 그 일이 반복되면서 누적 채무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러한 사정은 그리스만이 아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미국…도 마찬가지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능력 밖으로 뭔가를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 역시 모럴 해저드다. 거꾸로 후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유권자가 요구할 때 그것이 바로 '내 안의 모럴 해저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