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유니폼 입고 눈치 안보고 응원
 

프로야구 두산-삼성전이 열린 13일 잠실구장. 관중석 한켠에서 남녀 한 쌍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서로 꼭 붙어 앉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선남선녀 연인 사이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여성 관중은 두산 유니폼에 두산 모자를 쓰고 두산의 하얀 막대풍선을 가지고 있고,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성팬은 삼성 유니폼에 '최강 삼성'이 적힌 막대풍선을 두드리고 있다. 두산과 삼성이 점수를 낼 때마다 서로 희비가 교차하며 각자의 팀을 응원하느라 바쁘다. 결국은 여자친구가 삼성을 응원하는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약이 올라 막대풍선으로 '응징하는' 모션을 취하며 가벼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최근 프로야구 관전 문화에 새로운 트렌드가 잡힌다. 일행이나 커플이면서도 맞상대하는 양팀의 유니폼을 각각 따로 입고 와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일희일비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야구장 스탠드에서 급속히 번지고 있는 이른바 '따로 또 같이' 응원 방식이다.

지난달 21일 부산에서 열린 롯데와 KIA전에선 한 가족이 사직구장을 찾았는데 어머니는 롯데 유니폼을, 아버지와 아이들은 KIA 유니폼을 입고 관전하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비쳐 관심을 모았다. 지난 12일 광주 KIA-히어로즈전서도 KIA유니폼을 입은 여성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친구가 나란히 앉아 경기를 보다가 방송을 타기도 했다.

물론 과거에도 일행끼리 각자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그러나 예전엔 대다수가 평상복 차림으로 운동장을 찾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날 수가 없었다. 설령 있다 해도 홈팀을 응원하는 사람만 유니폼을 입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다른 관중과 다툼이 있을 것을 우려한 조심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최근 응원 팀의 저지를 입고 관전하는 메이저리그식 관전 문화가 확실히 뿌리 내리면서 '따로 또 같이' 응원이 수면 위로 또렷이 드러나게 됐다.

요즘은 원정팀 응원을 온 관중도 자신있게 유니폼을 입고 응원을 할 수 있게 됐고, 한술 더 떠 일행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만큼 프로야구 관중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엔 남성 관중이 절대적으로 많다보니 음주 후 거친 행동을 하는 등 관중석 분위기가 험악했지만 요즘은 여성과 가족단위 관중이 대폭 늘어나고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눈치 보지 않고 응원할 수 있게 됐다.

서로 다른 두 팀의 유니폼을 입고 관전하는 데는 또 하나의 목적이 숨어있다. 이런 패션을 차려 입으면 중계방송 때 TV 화면에 얼굴을 내비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프로야구 중계를 하는 케이블방송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기발한 문구의 플래카드나 특이한 복장으로 응원하는 관중이 자주 화면을 탈 수밖에 없다. 친구나 연인끼리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른 팀을 응원하는 모습은 방송 카메라의 좋은 표적이 된다.

팀 별로 색깔 다른 응원을 조직적으로 펼쳐 우리 사회의 단체 놀이문화를 주도해 온 프로야구 스탠드에서 또 하나의 '문화'가 탄생한 셈이다.

<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