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12일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치른 이탈리아월드컵 조별리그 벨기에와의 1차전. 한국의 0대2 완패였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이회택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스태프의 보고를 철썩같이 믿고 첫 경기 1주일 전에서야 현지에 입성했다. 이 부회장은 `아, 우리가 너무 늦게 왔구나. 큰일이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라운드의 풍운아'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한국축구의 영웅이다. 스트라이커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이회택 부회장에게 정확히 20년 전인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이회택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월드컵대표팀은 3전 전패의 참담한 성적표를 안고 쓸쓸히 귀국했다. 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최종예선에서 이회택호는 강호 사우디아라비아, 북한, 카타르 등을 상대로 무패(3승2무)를 기록하며 상쾌하게 본선 티켓을 따냈다. 7년 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을 끝으로 지휘봉을 놓은 이회택 부회장은 "이탈리아월드컵 목표는 한 경기 이겨보는 것이었다. 월드컵 첫 승을 해서 분위기를 타면 16강 진출까지 생각해 볼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회택호의 첫 경기는 90년 6월12일 베로나에서 벌어진 벨기에전이었다. 스트라이커 최순호를 비롯, 주장 정용환 등 베스트11의 거의 대부분이 제대로 뛰지 못했다. 몸이 무거웠다. 0대2로 힘 한 번 못 써보고 무너졌다. 5일 뒤 장소를 우디네세로 옮겨 치른 스페인전에서도 황보관이 중거리포로 한 골을 뽑았지만 결과는 1대3 완패. 4일 뒤 우루과이전. 그제서야 태극전사들의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루과이에 0대1 석패. 이회택호는 3패, 1득점-6실점의 졸전 끝에 짐을 싸 돌아왔다.

스타 출신 사령탑 이회택에게 이탈리아는 평생 잊지 못할 충격의 장소가 됐다. 그는 지난 30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0번을 다시 태어나도 축구 선수는 하겠지만 대표팀 감독은 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그 시절 내가 받았던 정신적인 쇼크는 너무 컸다. 대표팀 감독은 정말 힘든 자리였다"고 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이회택 감독의 지도력을 지나칠 정도로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이회택호의 본선 준비는 지금의 허정무호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평가전 상대는 도르트문트(독일), 스파르타크스(러시아), 아스널(잉글랜드), 과라니(파라과이) 등이었다. 90년 2월 스페인, 몰타 등지를 돌며 노르웨이 등과 네 차례 A매치를 했다. 제대로 된 스파링 파트너가 아니었다.

이 부회장이 아직까지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아쉬운 부분은 첫 경기 1주일 전쯤 이탈리아에 들어간 것이다. 오판이었다. 당시 그는 시차적응은 6~7일이면 충분하다는 스태프의 보고를 믿었다.

벨기에전을 이틀 앞두고 베로나 지역 3부리그팀과 치른 친선경기가 실패를 예고했다. 이 부회장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몸이 무거웠다. '아, 우리가 너무 늦게 왔구나. 큰 일이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싸울 상대가 어떻게 나올 지도 잘 몰랐다. 요즘 같이 인터넷이나 비디오 자료를 통해 상대를 분석하고 싸운게 아니었다. 그냥 '벨기에엔 스타 '아무개'가 있지' 하는 정도였다.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을 통해 꽃피운 전술 개념이 '압박(프레싱)'이었다. 태극전사들은 강하게 미드필드에서 조여오는 상대 선수들의 프레싱에 당황했다. 그때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최순호 현 강원 감독은 "우리가 압박을 몰랐던 것은 아니고 어설펐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준비가 부족했고, 나가서 싸울 선수들의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축구계에선 당시 이회택 감독이 다리를 떨 정도로 긴장했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월드컵 같이 큰 무대를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는 운집한 관중과 밀려오는 상대의 공포감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하고 무슨 판단을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경기전 대량실점을 하지 않을까 초조하기는 했다"면서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정신이 번쩍 들어 오금이 저릴 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자격으로 남아공월드컵에 간다. 그는 "허 감독은 선수, 트레이너, 코치로 세 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지도자다. 이탈리아월드컵 때는 단 한 명도 없었던 유럽파가 이번에는 5명 이상이나 된다"면서 "쉬운 상대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고 허정무호를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