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필로소피(philosophy)이다. 희랍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칸트·헤겔과 같은 사람들이 이 문파에 속한다. 그런데 철학에다가 '관'자를 하나 살짝 덧붙여서 '철학관'이라고 하게 되면 그 의미와 품격이 확 달라진다. 철학이 한국의 민초들과 접촉하면서 사주팔자를 봐주는 철학관으로 토착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업종에 종사하는 데 어느 정도의 내공을 쌓아야 하는가? 업계의 진입 장벽은 없는가?

한국 '철학관계(界)'의 이종격투기 장이 부산이다. 6·25 때 이북의 쟁쟁한 역술 고수들이 피란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탓에 그 수준이 제일 높다. 각종 문파가 운집해 있다. 근래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는 동래경찰서 정문과 바로 붙어 있는 장소에서 운관철학관을 운영하는 김재근(57)씨가 인상적이었다. "왜 하필 경찰서와 붙어 있는 데서 철학관을 하는가?" "내가 팔자에 형살(刑煞)과 수옥살(囚獄煞)이 있어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 아예 직장이 경찰서와 붙어 있으면 액땜이 된다. 일부러 물색하여 이 장소를 택했다." "몇년 공부하면 프로가 되는가?" "사업 실패하고 나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 분야 책은 눈에 들어왔다. 38세부터 이 공부를 시작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 그 외에는 전부 책만 읽었다. 하루 평균 10시간씩 역술서를 보았다. 그러기를 13년쯤 계속하니까 이때부터 눈이 열리는 것 같았다."

경영사상가인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읽어보면 전문가가 되는 데 대략 1만 시간의 집중이 필요하다고 나온다. 역술계에서는 2만명의 법칙이 있다. 2만명 정도의 팔자를 사례 분석해야만 한 칼 휘두르는 선수가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도달하기 전까지 어떻게 견디느냐이다. 김재근씨도 아마추어 시절에는 우선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남짓밖에 안 되었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하려고 찾아온 여자 손님에게 '남편 복이 있다'고 엉뚱한 사주풀이를 해서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때는 손님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났다. 이런 과정을 견뎌내야만 한다. 어떤 분야든지 프로 세계의 입문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철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