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경찰서는 가짜 피카소 그림을 진품으로 알고 구매자로 가장해 훔친 혐의로 김모(46)씨와 이모(55)씨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연합뉴스 4월 22일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경매에 나올 때마다 최고 낙찰가를 바꿔치우고 있다. 올 3월2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선 피카소의 1963년 작 '여인의 얼굴(Tete de femme)'이 810만 파운드(약 149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작년 12월 우리나라에서 피카소 작품 세 점을 판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듣고 엉뚱한 궁리를 한 세 사내가 있었다. 이들은 피카소 작품 세 점을 훔쳤고, 가까스로 찾은 작품엔 '가짜' 딱지가 붙여졌다.

일당이 피카소의 진짜 작품이라고 믿고 훔친‘콧수염 남자의 초상화’와‘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오른쪽)’. 작품을 팔려던 사람도 작품을 훔친 사람도 작품이‘가짜’라는 감정결과에 무릎을 쳤다.

수백 억원을 호가한다는 피카소의 작품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김모(60)씨는 2004년 중국에서 전자부품 제조업을 했다. 어느 날 사업을 하며 알게 된 사람이 "피카소 진품을 살 생각 있느냐"고 물어왔다.

작품은 '양을 안은 남자(데생)', '콧수염 남자의 초상화(유화)',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석판화)'였다. 김씨는 진품(眞品)으로 여겨 1점당 100만위안(약 1억5000만원)씩을 내고 작품을 모두 샀다.

시간이 흐르고 사업자금이 필요해진 김씨는 작품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해 공모(46·그림판매업자)씨에게 그림판매를 위탁했다. '피카소의 진품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돌자 도둑 세 명이 등장했다.

실업자이면서 '회장(會長)'직함을 쓰는 이씨(51)는 역시 실업자로 '이사(理事)'로 사칭한 친구 이씨(55)에게 "작품을 훔치자"고 제안했다. '이 회장'의 지인인 부동산컨설팅업자 김씨(46)씨도 도둑질에 가담했다.

이들은 공씨에게 "그림이 가짜일 수도 있으니까 우리도 감정을 해보겠다"고 했다. 공씨는 '양을 안은 남자'를 이씨에게 넘겨줬다. 이 회장은 공씨 앞에서 마치 그림에 식견이 있는 양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고서화(古書畵)에 대해서 잘 아는데 이 그림은 진짜 같다!" "꽤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그림인 것 같다"며 슬슬 바람을 잡더니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해보겠다"며 그림 한점을 들고갔다.

며칠 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공씨가 "그림을 돌려주든지 돈을 달라"고 했다. 일당은 "일본에 3000억원 정도를 가진 재력가가 있는데 세 작품을 200억원에 사고 싶어한다"면서 "나머지 두 작품을 가져오라"고 했다.

김씨가 중국에서 4억5000만원을 주고 산 그림을 몇십 배 더 비싸게 산다는 것이었다. 작년 12월 중순 공범 김씨의 사무실에 작품을 가져온 공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이 이사와 식사를 하러 갔다. 그게 화근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나머지 그림 두 점이 없어진 것이다. 알고 보니 공범 김씨가 그 사이 이 회장에게 그림을 건넨 것이었다. 이들은 공씨에게 "돈을 곧 줄 테니 기다려라"고 말했다.

10여일을 그렇게 미루다 이들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공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망은 점점 좁혀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이 회장은 12월 말 택시를 타고 나타나 그림을 몰래 내려놓고 달아났다.

하지만 범행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때였다. 경찰은 이 이사와 공범 김씨를 구속했고 도망간 이 회장을 쫓고 있다. 돌아온 피카소의 작품은 한번 더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놀라게 했다.

경찰이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에 감정을 의뢰했는데 세 작품 중 두 작품이 위작(僞作)으로 밝혀진 것이다. 저작권관리협회 관계자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피카소 뮤지엄에 진품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 결과 '양을 안은 남자'와 '콧수염 남자의 초상화'는 원래 작품과 사이즈가 약 10㎝ 정도 차이가 났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는 모두 75점이 있는데 이 그림이 그 중 하나인지 아니면 위작인지 직접 봐야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구속된 이 이사와 공범 김씨는 자신들이 훔쳤던 피카소의 작품이 위작이라는 경찰의 말에 "그럴 리 없다. 그 작품은 진짜 피카소의 작품이 맞다"며 감정결과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회장은 공범들에게 "내가 홍대 미대 교수, 단국대 교수, 일본 전문가들에게 그림을 들고 가 감정을 받았는데 모두 진짜라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양측 모두 가짜를 진짜로 오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