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90년대 한국 축구 간판 공격수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게는 1994년 미국월드컵이 그랬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이어 다시 밟은 두번째 무대. 1994년 6월27일 달라스 코튼볼스타디움에서 열린 독일과의 조별리그 3차전. 앞서 열린 1차전에서 한국은 스페인과 2대2, 볼리비아와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상황이었다. 독일의 간판 공격수 위르겐 클린스만에 두 골을 내주고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7분. 미드필드 중앙에서 박정배가 올려준 패스를 황선홍 감독이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칩슛으로 연결해 상대 골망을 흔들어 놓았다. 마침내 첫 골이 터진 것이다. 6만3998명의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서고 싶은 꿈의 무대 월드컵에서, 그것도 축구강국 독일을 상대로 골을 넣었다. 그러나 황선홍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함을 참지 못하는 성난 표정으로 주먹을 땅으로 내지르며 외마디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TV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
▶대표 14년간 골세리머니 안한 건 그때가 유일
28일 오후 1시 부산 강서구 강서체육공원내 부산 아이파크 구단 사무실. 창밖에는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황선홍 감독은 독일전 기억을 더듬으며 "14년 동안 대표로, 그것도 최전방 공격수로 뛰면서 많은 골을 넣었지만 골 세리머니를 안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월드컵 첫 골이었지만 좋아할 수도 없었고, 세리머니를 할 여유도 없었다. 앞선 스페인, 볼리비아전에서 수 많은 찬스를 놓친 부담 때문이었다. 1,2차전 천금같은 득점 찬스에서 황선홍의 슛은 터무니없이 뜨거나 골문을 어이없이 비켜갔다.
황선홍 감독은 "골을 넣고 난 뒤 '왜 이제야 터지는 거야. 왜 이제야 터지는거냐고'라는 자책감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로서 제 역할을 못한게 창피했다"고 했다.
사실 스페인, 볼리비아전에서 황선홍이 골을 넣었더라면 한국 축구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황선홍 감독은 "내가 갖고 있는 기량조차 모두 보여주지 못한게 너무나 억울했다. 스페인과 볼리비아전에서 찬스를 살렸다면 2002년이 아닌 1994년 16강에 올랐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1968년생인 황선홍 감독은 26세이던 미국월드컵 당시 몸 상태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준비도 많이 했다. 대회를 앞두고 서울 타워호텔에서 두 달간 합숙을 하는 동안 이를 악물고 훈련에 매달렸다.
황선홍 감독은 "미국월드컵을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팬들의 엄청난 기대에 부담이 컸던 대회였다. 클린스만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높은 벽을 느꼈다"고 했다.
▶공이 뜰까봐 차는게 겁났다
미국월드컵은 황선홍 감독의 축구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는 "미국월드컵이 끝난 뒤 내 이름이 나올 때마다 '똥볼'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붙었다. 아무리 잘해도 팬들은 미국월드컵의 실수를 떠올리며 정당한 평가를 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팬들의 시선은 차가웠고, 언론의 평가는 냉정했다. 아시안컵에서 골퍼레이드를 펼치고, 일본 J-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나, '황선홍은 골을 못넣는 공격수'라는 선입견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황 감독은 "아무리 골을 넣어도, 월드컵에서는 빌빌거리더니 별볼일 없는 국제대회, 수준낮은 리그에서는 골을 넣는다는 수근거림, 비아냥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했는데"라고 했다. 그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상처는 깊었다.
미국월드컵이 끝난 뒤 슛을 하는게 두려웠다. 슛을 때릴 때 "또 공이 뜨면 어쩌나 걱정이 돼 마음껏 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월드컵의 실패는 그냥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참담했던 그때 그 일들은 그에게 "두고 보자, 언제인가 기회가 주어지면 멋지게 뒤갚아 주겠다"는 오기를 심어줬다.
▶다시 찾아온 기회
1998년 프랑스월드컵 엔트리에 들었지만 대회 직전 다쳐 뛸 수 없었다. 대표팀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왔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 다시는 월드컵 무대에 설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황선홍 감독은 "대표팀의 주공격수로서 14년을 뛰었는데, 다시 실패하면 좋은 선수라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한국축구사에 별다른 족적도 남기지 못하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해 6월4일 부산아시아드에서 벌어진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 전반 26분 황선홍은 왼발로 천금같은 선제결승골을 터트렸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2대0으로 이겼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4강 신화의 전주곡이 된 월드컵 사상 첫 승리였다.
물론, 그는 1994년 독일전에서 하지 못한 골세리머니를 8년 만에 마음껏 할 수 있었다. 8년간 따라다니던 '주홍글씨'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