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부유하고 번성하게 하려면 반드시 상업을 진흥시켜야 하며, 반드시 큰 대회(박람회)를 열어야 한다. 그 대회의 장소는 상하이(上海)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상하이는 중국과 서양 문화가 서로 만나는 곳이고, 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곳이며…."
중국 청나라 말기의 민족기업가이자 유신론자인 정관응(鄭觀應·1842 ~1923)은 1893년에 낸 저서 '성세위언(盛世危言)'에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박람회를 개최하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 장소는 바로 상하이였다.
■117년 엑스포의 꿈 현실로
그로부터 117년이 지난 2010년 5월 1일 오전 9시, 중국이 부국(富國)을 위해 키워온 상하이 세계박람회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다. 상하이엑스포조직위는 개막 하루 전인 4월 30일 오후 8시 10분, 세계 각국 정상과 부총리급 이상 고위인사 100여명이 참석하는 전야제를 겸한 개막식을 갖고 지난 8년간 준비해온 엑스포의 개막을 선포한다.
중국은 이번 상하이 엑스포에 420억달러(약 2867억위안)를 쏟아부었다. 엑스포 공원과 각종 전시시설 조성에 들어간 돈은 44억달러에 불과하지만, 190㎞의 지하철을 새로 건설하고 훙차오(虹橋) 신공항을 건립하는 등 상하이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38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350억달러(외신 추정)보다 더 많다.
이런 천문학적인 투자를 감행한 배경은 중국이 30년 개혁·개방을 통해 가난한 인구 대국에서 글로벌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했다는 자신감이다. 상하이를 뉴욕과 런던, 파리에 못지않은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오기도 엿보인다.
이번 상하이 엑스포는 모든 면에서 역대 최대를 자랑한다. 여의도 면적의 62%에 달하는 5.28㎢의 대회장 면적, 42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자금, 192개 국가와 50개 국제기구를 합친 242개 참가자, 7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관람객 등이 모두 사상 최고의 수치이다.
■예상관람객 7000만명… 사상 최대
중국은 엑스포의 주제를 'Better City, Better Life(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로 잡았다. 중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을 맡고 있는 상하이 퉁지(同濟)대학 국제문화교류학원 차이젠궈(蔡建國) 원장은 "전 세계 인구의 55%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며 "상하이 엑스포의 주제는 관용과 조화를 핵심으로 하는 동방의 지혜와 현대적 이론을 결합해 인류에 더 나은 도시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포 대회장은 황푸(黃浦)강 양안의 푸둥(浦東), 푸시(浦西)로 나뉘어 있다. 푸둥 지역 중심부에 자리 잡은 주최국 중국의 국가관은 황제가 머리에 쓰는 면류관을 본 떠 만들었다는 높이 63m의 건축물이다. '동방지관(東方之冠)'이라는 이름을 붙힌 이 전시관은 이번 엑스포 전시시설 중 가장 높다. 중국관 구역 안에는 중국 국가관 외에 31개 성시(省市)관, 대만관과 홍콩관, 마카오관이 모여 있어 한 자리에서 중화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이번 엑스포가 중국만의 잔치인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도 자국의 전통과 이미지를 담은 독특한 형태의 전시관을 꾸며 13억 인구의 눈과 귀를 잡기 위한 레이스를 펼친다. 이번 엑스포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는 7000만명. 그중 중국인이 6500만명에 이른다. 김정기 주상하이총영사는 "이번 엑스포는 소리없는 경제전쟁이다. 엑스포를 관람할 정도가 되는 중국인은 중산층에 속하는 만큼, 이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는 것은 갈수록 커지는 거대 중국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억 인구의 눈과 귀를 잡아라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시범 운영 기간에는 독일관과 일본관이 큰 인기를 모았다. 관람객들이 밀려 3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관람이 가능했을 정도이다. 독일관은 움직이는 대형 금속구 위에 씨앗의 발아과정 등을 담은 화려한 동영상쇼를 펼쳐 중국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려 140억엔(약 1650억원)의 사상 최대 비용을 들여 지은 일본관은 지붕을 태양광 발전 기능이 내장된 피막으로 둘러싸 앞선 환경기술을 한껏 뽐냈다. 첫 관람구역에 당나라 시대 중국 문물을 배워오던 일본 견당사(遣唐使)와 관련된 전시 자료를 배치해 중국과의 역사적 인연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띄었다. 영국관은 끝에 식물의 씨앗이 붙은 6만개의 아크릴 막대를 건물 외부에 촘촘히 꽂아 털모자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외관을 연출했고, 덴마크관은 수도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을 공수해와 전시관 내 연못에 배치했다.
이번 엑스포는 오는 10월 31일까지 184일간 개최된다. 한 달도 안 돼 끝난 베이징올림픽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높은 운영 능력을 필요로 한다. 중국인이 세계와 만나는 거대한 학습장 역할도 할 것으로 중국 당국은 보고 있다. 쉬웨이(徐威) 상하이 엑스포조직위 대변인은 "엑스포는 중국인이 세계에 눈 뜨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이 1988년 올림픽과 1993년 엑스포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이번 엑스포를 통해 국격이 한 단계 높아지고, 국민 수준도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