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용(馬泰龍·42)은 양치기다. 10년 전부터 양치기를 꿈꿨고 4년 전 농장에 취직하면서 양치기가 됐다. 마태용이 벌판에서 명령하면 양몰이 개(牧羊犬·sheep dog)가 달음질쳐 양떼를 몬다. 개는 매서운 눈으로 양을 쏘아본다.

'어웨이(오른쪽으로 돌아)' '컴바이(왼쪽으로 돌아)' '라이다운(엎드려)' '워크(걸어)' 같은 구호에 맞춰 혀를 빼 밀고 쏜살같이 달리다 멈춘다. 마태용은 작은 목소리만으로 흩어진 양떼를 모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태용의 양몰이개 샘(3)·칸(3)·와이(6개월)는 모두 보더콜리(Border Collie)종이다. 보더콜리는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에서 베이브에게 양몰이를 가르쳐 준 영리한 개다.

강원 횡계. 전기 이발기 소리가 '지르메 양떼목장'에 징징 울려대고 있었다. 마태용의 회색 보더콜리 '샘'은 해질 때까지 기둥에 묶여 얌전히 주인을 기다렸다. 회백색 양 무리가 고개를 들고 입을 동그랗게 모아 "음매에에" 했다.

축사 안에서 마태용이 양털을 깎았다. 그 모습이 제법 서툴렀다. 이발기로 콧잔등이나 겨드랑이·사타구니를 깎을라치면 양이 "메에!"하고 몸을 뒤쳤다. 그럴 때마다 마태용은 "끙"하고 허공에 발차기하는 양과 씨름했다.

양 한 마리 털을 깎는 데 20분쯤 걸렸다. 마태용은 이달 초부터 매주 월·화요일마다 양털을 깎고 있다. 이 목장에서 하루 15만원 받고 20마리씩 깎아 한 달간 180마리를 깎기로 했다.

외국에선 능숙한 기술자가 하루 만에 200마리도 깎는다고 한다. 마태용은 "충남 당진에서 오가는 비용을 치면 남는 게 없지만 배우는 셈치고 양털을 깎는다"고 했다. 전기 이발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태용의 손은 안으로 굽어 있었다. 마태용은 "태어날 적부터 그랬다"고 했다. "지체장애 2급이지만 물건을 펴는 데는 지장이 없다. 좀 불편할 뿐이다." 오후 5시쯤 일을 끝내고 마태용이 걸어나오자 샘이 폴짝 뛰어 주인 손을 핥았다.

경남 거창 과수원집 막내아들 마태용은 학교를 마치면 함께 놀 친구가 딱 한 명 있었다. 셰퍼드 '벤'이었다. 추수가 끝난 논밭에서 벤은 볏단을 야무지게 뛰어넘었다. 연못에 공을 던지면 벤은 겁 없이 공을 물어왔다.

벤은 마태용이 일곱 살 때 태어났고 중학교 마칠 무렵 죽었다. 1984년, 고1이던 마태용에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그는 부모를 설득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이듬해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땄다.

스무 살 무렵 부모가 떨어져 살게 되자 마태용은 어머니와 서울 신당동으로 이사 갔다. 어머니는 순댓집에서 일했다. 아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여름에는 막노동하고 겨울에는 미아리 근처에서 찹쌀떡을 팔았다.

마태용은 스물여섯에 9급 공무원 시험에 붙었다. 강원 삼척 노곡우체국에 발령받아 3개월간 실무수습을 거쳤다. 그는 시보 기간이 끝날 때쯤 아프기 시작했다. 온종일 어지럽고 설사를 했다.

168㎝인 마태용은 원래 67㎏이던 몸무게가 35㎏까지 떨어졌다. 크론병(Crohn's Disease·구강에서 항문까지 소화기관에 만성 염증이 생기는 질병)이었다.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3년간 치료했다.

어머니는 집을 경기 구리로 옮기고 마태용에게 60만원짜리 셰퍼드를 안겼다. 마태용은 누워서 생각했다. '사람은 일해야 한다. 나는 직장에 다닐 수 없다. 개를 키우고 싶다.'

그는 인공항문을 달고 배변 주머니를 차기로 했다. "의사들은 말렸지만 누워서 치료만 하느니 신체의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땀 흘려 일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마태용에게 3000만원을 내놨다.

21일 오전 초록풀 무 성한 충남 당진 태신 목장에서 마태용이 샘과 양몰이를 하고 있다. 마태용의 꿈은 돈 차곡차곡 모아서 3 년에 한번씩 유럽에 서 열리는‘쉽독 트라 이얼(양치기 대회)’ 에 나가는 것이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마태용은 "어머니가 '네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돈을 내줬다"고 했다. 마태용은 개를 훈련하기로 했다. 개에게 사료 대신 닭고기 생식·배춧잎·쑥·냉이·민들레잎을 먹이는 게 더 낫다는 것도 배웠다.

그러면서 보더콜리를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에는 이렇게 나와있었다.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아도 개는 애초부터 종자가 좋아야 한다.' 보더콜리는 수십 종의 양몰이개 중에서 지금까지 본성을 잃지 않은 종자였다.

마태용은 1998년 미국 농장 30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보더콜리를 사고 싶다'는 내용에 농장주들이 답해왔다. '개를 보신탕으로 끓여먹는 한국에는 안 팝니다.' 그러다 2001년 미국 테네시주의 한 농장에서 개를 보내왔다.

마태용은 남양주에 버려져 있던 땅 1000평을 보증금 100만원, 1년에 70만원씩 주고 빌려 '스마트 농장'을 차렸다. 이후 2년에 걸쳐 미국 농장에서 보더콜리 5마리와 오스트레일리안 캐틀독 2마리를 350만원씩 주고 들여왔다.

오리 4마리도 샀다. 검은색 보더콜리 '딸랑이'는 훈련도 안 했는데 본능적으로 마당에서 오리를 몰아댔다. 신난 마태용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양 다섯 마리를 구했다. 매일 아침 봉고차에 양을 싣고 딸랑이를 조수석에 태웠다.

남양주 진건읍 생활체육운동장에서 조기축구회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양을 풀고 연습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영국 양치기 책과 비디오가 교과서였다. 조기축구회원들은 "양이 구슬 같은 검은 똥을 엄청나게 싼다"고 항의했다.

딸랑이는 오리처럼 양을 잘 몰지 못했다. 매일 승합차에서 내린 양을 싣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포천의 한 농원에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양치기 연습을 계속했다.

2005년 겨울 마태용은 영국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한 달간 던디(Dundee)의 농장에서 일손 거들고 밤동안 여우·까마귀로부터 새끼양을 돌봐주는 대신 양치기를 배웠다. 농장에서 양 300마리를 몰다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돌아올 땐 그동안 폐지 주워 매일 2만~3만원씩 모은 돈 500만원을 털어 3살짜리 보더콜리 '넬리'도 사왔다. 넬리는 양몰이 훈련을 마친 개였다. 마태용은 "넬리가 나에게 양몰이 법을 가르쳤다"고 했다.

2006년 마태용은 한국에서 더 넓은 땅을 찾아 나섰다. 대관령 바람마을 양떼목장 주인에게 "월급은 안 줘도 되니 양몰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임시거처에서 개들과 먹고 잤다.

반년이 지날 때까지 개들은 양을 모아 오긴 해도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지 못했다. 주인 명령에 전력으로 질주하던 개가 썩은 소나무 밑동에 걸려 발을 다치기라도 하면 회의가 밀려들었다.

개들은 흥분하면 양을 물기도 했다. 마태용은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났는데 언제부턴지 모르게 개들이 내 목소리를 듣고 화났는지, 기분이 좋은지, 자기가 잘했는지, 잘못을 했는지를 모두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1년쯤 지나자 대관령에 기가 막히게 양을 모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번졌다. 마태용은 하루에 4번씩 양몰이 쇼도 하고 개 위탁 훈련도 시켜주면서 한 달에 150만~200만원씩 벌었다.

몇몇 사람들은 '스마트 농장 마태용 선생님'을 줄여 '스님'이라 부르며 양몰이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재작년 서울대공원은 마태용에게 '양몰이 쇼를 위해 개를 훈련해줄 수 있느냐'고 연락해왔다.

마태용은 작년 11월 훈련소를 차리려다 충남 태신목장에 취직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개밥 주고 밥 해먹고 7시20분쯤 목장에 간다. 가서 양몰이를 하다 밤 10시쯤 돌아와 목장에서 내준 오래된 사택에서 잠이 든다.

마태용은 "하루도 지겹지 않다"고 했다. "평생 일해도 나는 10만평 넘는 초지를 살 수 없다. 개와 양을 데리고 초원에서 양몰이를 하는 순간에는 내가 그 땅의 주인이다. 욕심을 버리면 양치기 일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