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서기석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6~7세기에 문자(文字)가 이바지한 것은 무엇인지를 조명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20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신라실에서 6~7세기 신라 문자를 주제로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문자(文字)’ 전시를 연다.

6~7세기는 신라가 마립간(麻立干)이라 불리던 왕의 호칭을 왕(王)으로 바꾸고, 국호를 신라(新羅)로 정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시기다. ‘삼국유사’는 이 시대를 특별히 ‘중고(中古)’라고 구분한다. 이 시기에 신라는 우경(牛耕)을 통한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기반으로 정치체제를 정비했다. 또 율령 반포와 불교 공인, 영토 확장 등도 모두 이 시대에 이뤘다.

이 시기의 역동적인 모습은 당대 신라인이 금속기·비석·목간·토기 등에 남긴 문자기록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돌에 글을 새겨 세상에 보이다 ▲넓어진 영토에 기념비를 세우다 ▲체계적으로 지방을 다스리다 ▲각지로 퍼져가는 신라문화 등의 주제로 구분된다. 5세기의 고분에서 출토된 문자 자료를 통해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기의 모습을 보여 준다. 또 지방의 주민을 율령으로 통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최고(最古)의 비석인 포항 ‘중성리비’와 영일 ‘냉수리비’를 전시한다. ‘북한산진흥왕순수비’(국보 제3호)를 통해 진흥왕대 신라의 영토 확장의 모습도 보여준다.

신라 영역으로 들어온 지역에 지방관을 파견하고 주민들을 성 쌓는 작업에 동원하는 등의 모습은 ‘남산신성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아울러 전국에 댐을 쌓아 농업 생산력을 발전시켰는데, 영천 청제(菁堤)를 쌓을 때 세운 ‘청제비’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후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하는 화랑의 맹세가 기록된 ‘임신서기석’(보물 제1141호·사진)도 전시한다. 세금 징수 등의 내용이 있는 각종 목간과 글씨가 있는 토기도 볼 수 있다.

최성애 학예연구관은 “그 동안 신라시대 전시는 황금 유물을 중심으로 한 5세기에 집중됐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신라가 정치·사회·사상 등의 영역에서 두루 성장한 시기인 6~7세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광식 관장은 “지난해 우리나라 통사 전시를 하면서 신라시대 부분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며 “신라라는 국호는 6세기부터 사용했는데 이번 전시는 진정한 의미의 신라 시작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