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도 기술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게 하급 기술이라면, 효과적으로 다툼을 마무리하고 화해의 수순을 모색하는 것은 상급 기술이다. 연애의 승패는 이 기술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오래된 연인을 뒀거나 결혼한 여성들이 가장 자주 토로하는 불만도 이렇다. "미안하다고 말하긴 하는데 심드렁한 표정으로 진심을 담지 않고 말하니까 더 화가 나요. 무시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싸움이라는 게 늘 새로운 소재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같은 실수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것도 대부분 남자의 실수로. 수십 번도 넘게 "다시는" "절대로" 같은 수식어를 동원해 굳은 다짐을 했던 남자가 또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고 치자. 화난 여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이 사태를 여러 번 겪은 남자는 그저 사태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의 입에선 전후좌우 성실한 답변 없이, 무성의하게도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만 성급하게 튀어나온다. 최악이다. 남자의 건성 사과에 여자는 분노한다. 반대로 남자는 계속 사태를 악화시키는 여자에게 슬슬 화가 난다.

남자들 사이에 이런 우스개가 있다. '각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유부남들이 퍼트린 돌팔이 해결책이다. 구두약속을 무수히 어긴 후 화해 방법을 찾지 못한 남성들이 결국 각서로 최후의 면죄부를 받아왔던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이건 문제 해결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답안지만을 외우는 머리 나쁜 학생들의 전형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상당수는 누군가와의 대화, 혹은 수다를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 예순이 넘은 우리 어머니도 전화기만 잡으시면, 한 시간은 훌쩍 넘기는 수다의 내공을 발휘하시곤 한다.

연인과 아내와의 싸움에도 화를 쏟아낼, 그래서 스트레스가 해소될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상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결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섣부른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 드는 건 역효과를 낼 뿐이다. 마음에 쌓인 일정 정도의 불만이 추궁과 질책을 통해 모두 빠져나갈 만큼 시간을 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잘못을 저지른 초등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얘기해 봐'같은 말을 듣는 곤혹스러움이 있다는 것도 같은 남자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실수를 했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을.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경험으로 배운 팁을 하나 알려주겠다. 대부분 여성과의 다툼은 팽팽한 신경전으로 시작된다. 이 단계가 냉전 단계다. 싸움을 확대시키고 싶지 않다면, 약간은 비굴한 표정으로 주위를 맴도는 것이 좋다.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것이 현명하다. 잠시 후 맹공이 이어진다. 이 단계가 열전 단계이자, 적절한 변명(!)과 상황 설명을 통해 상대의 스트레스 지수를 조금씩 떨어뜨려야 하는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후 사태는 조금씩 진정되고, 화해를 청할 시간이 다가온다. 여성들의 대사 속에 타이밍을 찾아낼 힌트가 담겨 있다. 불만을 쏟아내던 여자가 자기 한탄 조의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면, 화가 어느 정도 풀려 상황을 종결짓기 원하는 것이다. 자칫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신세 한탄 조의 이야기에 '욱'해선, 똑같은 이야기로 맞받아치지 말라는 것이다. 여자들의 신세 한탄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의미이지, 두 사람의 관계를 '쫑' 내겠다는 의사가 아니니까.

역사를 공부해보면, 대부분의 잘못과 실수는 남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주의 입장에서의 편견이 아니라, 데이터가 분명한 통계다. 그러니 여성들이 어떤 단계를 거쳐 화를 푸는지를 알아두는 것은 삶에 있어 유용한 기술이 될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자 영원한 타자, 여자
할 말 다 하고도 뒤끝 없이 이기는 싸움의 기술
[인사이드] 연애에도 기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