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먹한 첫 만남, 어느새 오빠 동생

어색한 첫 만남.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상대 외모에 대한 칭찬 릴레이부터 주문했다. "주변에서 잘 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최) "인기가 가장 많은 것 것 같아요. 어제 술자리에서 '내일 최윤아 선수를 만난다'고 했더니 같이 오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았어요."(함)

둘다 스타인데, 초면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남녀 프로농구 선수들이 교류할 일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겠다. "(여자 선수들 중에) 인물이 없어서 그런가봐요."(최) "대표팀 훈련도 외부에서 많이 하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아요."(함)

사실 최윤아에게 절친 남자 선수가 한 명 있기는 하다. 함지훈의 매치업 상대였던 동갑내기인 KCC 하승진이다. "(하)은주 언니 때문에 (하)승진이랑 친해요. 언니네 집에 갈 때마다 보니." 그렇다면 챔프전 때도 KCC를 응원했다는 얘기? 하지만 역시 '재치있는 윤아씨'다. "(하)승진이가 안 나와서 조용히 보기만 했어요." 그러나 친구한테 미안했는지 바로 "(하)승진이가 부상 후 정말 많이 힘들어했어요. 누나 전화조차 안받았을 정도니까요"라며 우정의 코멘트를 날린다.

초면이지만 서로의 플레이 스타일은 익히 알고 있었다. "여자 농구 끝나고 차량으로 이동할 때 남자 농구 중계를 간혹 보게 되요. 오빠는 센터로 치면 큰 신장은 아닌데, 타이밍을 이용한 농구를 참 잘하시는 것 같아요."(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윤아는 센스있고 빠르고. 전주원 누나나 양동근 형처럼 거칠게 휘젓고 다니는 스타일의 농구를 하는 것 같아요."(함) 첫 만남에선 데면데면했지만 어느새 "지훈이 오빠" "윤아"라며 자연스런 호칭을 불렀다.

▶평범하게 시작해 스타로 컸다

프로 입문 때만 해도 둘다 후순위 선수였다. 최윤아는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 함지훈은 10순위로 모비스와 인연을 맺었다. 둘다 첫 해에는 팀 성적도 안 좋았다. 최윤아는 팀이 꼴찌, 함지훈은 팀이 9위를 했었다. 신한은행은 그후 4년 연속으로 통합 우승의 신화를 썼고, 모비스 역시 2006~2007 시즌에 이어 올시즌 또 다시 통합 우승을 이뤄냈다. 최윤아는 지난 시즌 MVP를 했고 함지훈은 올해 MVP가 됐다.

통합우승 이야기로 화제가 이어지자 거의 동시에 대답한다. "남들은 쉽게 이긴다고 했지만 올 시즌은 진짜 힘들었어요. 챔프전 2차전 지고는 한 숨도 못잤어요. 짧은 몇 분의 실수로 졌는데 그 실수가 다음 경기에서도 되풀이될까봐 너무 걱정이 됐어요."(최) "한 게임 한 게임 끝날 때마다 불안했어요. 계속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잘 하고 팀도 이길 수 있을까. 이기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한번 쉬고 곧바로 다음 경기 걱정하며 한 시즌을 보냈어요. 사실 챔프전도 6차전 때 질 거라고 생각 안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걱정이 됐죠.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고."(함)

그런데도 왜 그 힘든 농구를 평생 업으로 삼았을까. "6개월이 끝난 후의 희열이 너무 좋아요. 끝났다는. 딱 하루만 좋을 뿐이지만. 곧바로 다음 시즌을 걱정해야하지만. 너무 매력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이 대목에선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모양이다.

둘다 부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최윤아는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고질적인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을 거쳐 시즌 중간에야 팀에 합류했다. "올해만큼 오래 쉰 적이 없어요. 아픈 것 보다 못 뛴다는 게 너무 화났어요. 참고 뛰어도 무릎이 정상이 아니니 플레이에 제한이 되고." 함지훈은 중앙대 재학 중 발등뼈 골절로 인해 4개월가량 쉰 적이 있고, 프로 입문 첫 해인 2007~2008시즌에는 플레이 도중 루스볼을 잡다 무릎 연골이 파열돼 시즌아웃이 됐다.

▶농구만 되나, 얼굴도 되지

팀 복에 감독 복이 겹쳤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분모. "임달식 감독님은 타협이 없으세요. 일단 감독님 스케줄이 짜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해야 돼요. 선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분위기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 버리신거죠."(최) "유재학 감독님은 KCC (추)승균이 형은 오른쪽을 좋아한다는 등 상대 선수의 플레이 습관까지 완벽하게 분석하니까요. 저희끼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함)

최윤아는 귀여운 이목구비로 '코트의 문근영'으로 불리며 많은 남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 헌칠한 키에 선 굵은 마스크의 함지훈 역시 많은 여성 팬을 거느리고 있다. 둘다 미니홈피를 운영하는데 최윤아는 많으면 100명, 함지훈은 요즘 거의 1000명씩 방문하고 있다. 좌우명도 참 비슷해 최윤아는 '신장이 아닌 심장을 키우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등을 되뇌이고 함지훈은 'I Believe I can fly'를 외치며 코트에 나선다.

▶농구와의 인연은 필연

코흘리개 시절 각자 어떻게 농구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함지훈 얘기부터 들어보자. "무작정 비행기를 많이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농구를 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더군요. 일부러 공부 안하고 반항했죠. 외할머니가 거들어주셔서 다시 시작하게 됐어요. 외할머니는 요즘도 경기 끝나면 문자가 와요. '자유투가 잘 안들어가니 무릎을 낮추고 좀 더 공을 높게 던져라'는 식으로."

또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중학생이었던 팀 선배 양동근을 만나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고.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농구장이 없어서 형이 다니던 중학교 체육관으로 원정을 갔거든요. 그때는 키가 서로 비슷하게 작았어요. 저는 '저 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걱정했고, 형은 저 보고 '쟤는 살 빼려고 운동하나보다'하며 혀를 찼다고 하더라고요."

최윤아는 체육 선생님인 삼촌의 도움으로 농구와 인연을 맺었다. "오빠가 한 명 있고 사촌들도 다 남자 형제 밖에 없어요. 농구대잔치의 연고전을 보면서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졌어요. 체육 선생님이었던 삼촌이 여자가 농구부에 들어갈 수 있는 서대전초등학교를 소개시켜주셨죠."

▶아시안게임, 그들이 있다

야구나 축구에 비해 농구의 입지가 요즘 너무 좁다. "문이 너무 좁아요. 하려는 사람은 많이 있는데 프로로 오는 게 너무 힘들고. 못와도 대비책이 있어야하는데."(함) "여자농구는 심각해진 지 오래죠. 환경이 너무 열악하니 지원자도 적은데다 후배들이 선배들에 비해 정신력도 많이 떨어지고. 매스컴이나 팬 여러분들이 조금만 지원, 아니 관심을 가져준다면 갭이 줄어들 것 같은데."(최)

당장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특효약이 있기는 하다. WBC나 월드컵처럼 국제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것. 오는 11월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농구계가 사활을 거는 이유다. 최윤아의 대표팀 출전은 확정적. 함지훈도 19일 상무에 입대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대표팀에 발탁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중학생(중앙여중)이었는데 저 무대에서 뛸 날이 올까 했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코트에 서니 뭉클한 게 올라오더라고요."(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방성윤 등) 선배들이 금메달 따는 모습을 TV로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저런 데서 뛰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했죠."(함)

"남자농구의 경우 중국에 중동까지 강세라고는 하는데. 우리도 센터나 가드진은 훌륭하니까 외곽슈터들이 잘해준다면 승산은 있을 것 같아요. 여자팀 보다 일찍 훈련에 들어간다고 하니까 준비 잘하셨으면 좋겠어요."(최) "여자 대표팀은 원래부터 남자와 다르게 세계에서 경쟁력이 있잖아요. 지원이 좀 더 잘 되고 선수들이 일찍부터 준비를 잘해준다면 사실 아시안게임은 물론 올림픽에서도 (메달이) 가능할 것 같아요."(함)










지훈 19일 상무 입대…윤아 "아픈데 없이 무사히 마치고 다시 만나요"
 
함지훈은 19일 상무에 입대한다. 아시안게임에서 만약 금메달을 따면 신병역법에 의해 도중에 제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당장 다음주부터는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해야할 처지. "어 오늘 처음 만났는데 벌써 이별이네요. 아픈데 없이 군 생활 잘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구요, 만약 아시안게임에 대표팀으로 동반 발탁된다면 선수촌에서 반갑게 재회해 재밌게 지냈으면 좋겠어요"라며 최윤아는 수줍게 함지훈에게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전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두 사람을 아시안게임 금빛 남매로 또 한번 인터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