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강희수 기자] ‘눈감아 봐도’의 가수 박준희(36)가 책을 냈다. 1991년 여고생 신분으로 ‘눈감아 봐도’를 히트시키면서 가요계 혜성으로 등장했던 박준희는 우리 시대 천재 음악가로 손꼽히는 9명의 뮤지션을 1년 3개월에 걸쳐 일일이 인터뷰 한 뒤 활자로 정리했다. 여고생 스타에 이어 1996년 그룹 ‘콜라’로 활동하던 기억이 생생한 박준희는 그 사이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유명 가수들의 가사를 쓰는가 하면, 방송 작가 생활도 했고 근래에는 후배들을 위해 대학 출강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가 펴낸 ‘음악 또라이들’(국일 미디어)은 근래 그녀의 활동 영역과 최근의 가요계 상황에서 단초를 얻고 있다. 음반 기획사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연습생들의 하루하루를 지켜 봤고 그들의 성장과 좌절을 함께 했다. 당연히 화려한 조명 보다는 참담한 삶의 무게를 더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노력’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 속에 새기고 사는 그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 때 뭘 알았겠어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그냥 내가 가야 할 길처럼 달려 갔는데…, 당연히 어려움이 많았죠. 제가 그런 고통을 겪어 봤기에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요. 지금처럼 10대 초, 중반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는 세태에서는 ‘왜 음악을 하는 지’에 대한 카운슬링이 반드시 필요해요. 좌절 뒤에 오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이런 생각으로 집필은 시작 됐다. 평탄치 않은 길을 걸었던 뮤지션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가려진 이야기들을 정리해 들려 주는 일이었다. 사실 그녀가 정리한 그들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이야기인 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의 궤적에는 그녀의 감성이 함께 묻어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래서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태원 윤일상 신대철 박미경 말로 조PD 전제덕 현진영 남경주 등 9명 뮤지션의 스토리는 인터뷰 형식이 아닌 자서전 형태를 띠고 있다. 신문 기사를 읽는 것처럼 간결한 표현은 1인칭 시점의 격정을 피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다. 덕분에 문장은 무겁지 않고 맥락은 한 눈에 들어온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전해지는 천재 음악가들의 남모를 고통은 그래서 더욱 처연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주가를 날리고 있는 김태원(부활)의 이야기는 TV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는 말 그대로다. 음악을 사랑했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가운데, 젊은 시절의 방황과 사랑, 그리고 음악인으로, 예능인으로의 변천 과정이 담담하게 흐르고 있다. 포복절도하게 하는 김태원 식 화법으로 TV에서 들었던 그것과는 같은 내용이라도 여운이 다르다.
가수 박미경은 미국인 남편 트로이와의 만남과 사랑 이야기, 보컬 트레이너 세스릭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다. 한국에서 한참 주가를 날리다 갑자기 미국행을 택한 박미경은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 스티비 원더 같은 대형 가수들이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세스릭스로부터 발성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는 사실을 박준희를 통해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노래를 3개월만 하고 싶나요? 아니면 평생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을 후배 가수들에게 던진다.
현진영은 중학교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병세가 깊어 어렵게 가정을 꾸렸던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는 우유 배달을 하고 학교에 가선 잠을 잤다. 방과 후엔 중국집에서 접시를 닦고 밤에는 이태원 업소에서 춤을 췄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일만하다 지쳐 쓰러져 잠들 땐 왠지 모를 서러움에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켰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절망 끝에 한강에 투신했던 이야기, 대마초로 구치소 생활을 했던 이야기, 감옥에서 최진실의 매니저 배병수를 살해한 사람을 만난 이야기 등은 호사가들의 귀를 솔깃하게도 하지만 작가는 2004년 작고한 아버지를 기억하며 재기를 꿈꾸는 현진영의 내레이션으로 ‘현진영 에피소드’를 마무리 한다.
이 책에서 소개 된 이야기들은 사석에서도 듣기 힘든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숨기고 싶은 가정사도 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도 있다. 특별히 돈독한 사이가 아니면 듣기 힘든 에피소드들은 박준희라는 인터뷰어에 의해 쉽게 풀려 나왔다. 같이 음악을 했고 비슷한 고통을 공유한 이력이 경계의 벽을 허문 결과였다. 각 에피소드의 교훈적인 마무리들은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왜”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박준희는 인터뷰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모두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려 했고 과장된 표현을 줄이려 했는데도 종종 그런 흔적들이 남았어요. 어려웠지만 나 혼자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씩씩하게 마무리 했어요”라며 밝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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