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머리가 깨질 듯 아파. 빨리 와줘.”
지난 2일 0시30분, 정모(58)씨는 대학교 학부 수련회(MT)를 떠난 딸(23)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광주광역시에서 택시를 타고 2시간을 달려 전남 구례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정씨는 "딸은 눈의 초점이 풀려 있었고,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6시쯤 정씨와 함께 광주 서구 화정동 집에 도착한 딸은 이틀 동안 방안에만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현관 문은 3중으로 잠그고, 방문도 꼭 잠금 상태였다.
그리고 4일 오전 2시30분, 딸은 “잠깐 바람쐬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나갔고, 4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대생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유족 증언에 따르면, 모 대학교에 재학중인 딸 정씨는 지난 1일 2박3일 일정으로 구례 송원리조트로 학부생 100여명과 함께 수련회를 떠났다. 수련회 첫날 밤 남학생 3명, 여학생 17명과 같은 방을 배정 받은 정씨는 친구들과 일명 ‘좀비게임’을 했다. 불이 꺼진 방안에서 눈이 가려진 술래가 다른 사람을 잡는 게임이다. 잡히는 사람이 다시 술래가 된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좀비게임을 빌미로 불특정 남학생이 정씨 온몸을 사정없이 더듬었다. 이 탓에 수치심을 느낀 정씨가 자살에 이르게 됐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아버지 정씨는 “딸이 ‘좀비게임을 하다가 성추행을 당해 너무 괴롭다’고 증언했다”며 “평소엔 쾌활한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정씨 외삼촌(45)은 “조카는 상고를 나온 뒤 재수 끝에 그토록 원하던 미대에 합격할 만큼 의지력이 강했다”며 “그런 애가 자살할 정도라면 성추행보다 더한 일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 주장에 따라 경찰은 성폭행 여부를 가리기 위해 6일 부검했으며, 정밀검사 결과는 보름 뒤 나온다.
당시 정씨와 같은 방에 있었던 학생들과 대학측은 유족들 주장을 일축했다. 이 대학 학장은 “학생들을 조사하니 좀비게임을 했다고 했다가, 다시 진술을 바꿔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며 술을 마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학생처장은 “숨진 학생은 평소에도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한 학생은 “게임 도중 정씨가 비명을 지르거나 반항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6일 학생 6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했다. 광주서부경찰서 김병국 형사과장은 “학생들 조사에서 성추행과 성폭행 정황을 밝히지는 못했다”며 “다만 정씨 집에서 2008년부터 작성한 유언장을 발견했는데, ‘죽고 싶다’ 등의 내용과 목을 맨 사람, (칼로) 손목을 긋는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의 자살 경위와 사인을 밝히기 위해 관련 학생들을 추가로 소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