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자 A1면 '영어격차 어찌하오리까' 보도는 강남과 지방의 영어격차에 대한 신선하고 의미있는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 검증방법과 절차, 윤리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어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강남과 경북 군지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은 '실용영어능력평가시험'이 아니며, 고교생에게 적합한 시험도 아니다. iBT·토플(TOEFL)은 미국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능력시험이다. 읽기는 인문학·고고학·인류학 등 대학 강의 내용이 나오고, 듣기 역시 대학 강의에 대한 이해를 묻는 내용이 다수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영어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닌 것이다.
또한 텝스(TEPS)는 성인에게 적합한 시험이고, 말하기와 쓰기 영역이 제외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토플과 텝스를 절충한 이번 시험에 의한 비교와 분석은 학생들의 키를 측정하겠다고 하면서, 체지방 지수 결과로 양쪽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즉 평가의 타당성(Validity)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이 시험은 공정한 시험이 아니다. 많은 강남 학생들은 학원에서 토플과 텝스를 준비해왔다. 반면 경북의 학생들은 토플과 텝스라는 시험을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험은 응시 경험이 많을수록, 시험 형식에 익숙할수록 점수가 높다. 이번 시험성적의 비교와 분석은 사격대회에서 활에만 익숙한 부족에게 시험 당일 소총을 지급하고 대회를 진행하는 것과 같다.
셋째,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사설 학원이 주관한 시험에서 강남 학생들은 준비를 이미 충분히 한 상태로 시험을 치렀으며 그 결과 경북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번 보도를 통해 가장 수혜를 받은 곳은 사설 어학원일 것이다. 하지만 강남 수준의 사교육을 접할 수 없는 서울의 타 지역과 지방에선 더 심한 불안감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기사의 기획 의도가 참신하고 결과가 시사하는 의미도 있지만, 평가의 타당성과 공정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좀 더 공정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영어격차 문제에 접근했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2012년부터 고교생의 영어소통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수준 영어능력시험(말하기·쓰기)이 도입될 예정이다. 사교육기관이 시행한 시험으로 섣부른 비교분석을 하는 것보다 좀 더 공정하고 타당한 시험으로 학생들의 영어소통능력을 평가한다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입력 2010.04.0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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