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이진호 기자] '사요나라 이츠카'는 니시지마 히데토시, 나카야마 미호 등 일본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해 태국에서 촬영된 영화다. 일본에서 먼저 개봉된 이 영화는 135억 원의 현지 흥행 수익을 거두며 현지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영화 내 외적 요소들을 놓고 볼 때 누구도 이 영화가 한국 영화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사요나라 이츠카'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로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 관객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재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의 자본과 기획력, 연출진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순수 한국 영화다. 다만 영화 속에 한국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을 뿐이다.

그간 '사요나라 이츠카'와 같이 독특하고도 특이한 현지화 전략을 시도한 영화가 드물었기에 영화의 흥행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관계자들이 많았다.

더구나 사랑이라는 민감하고도 어려운 주제의 영화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서로 다른 국적의 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에서 그려졌다는 점 역시 긍정보단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회의론을 보기 좋게 날려버리며 사랑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무릎을 치며 '사랑은 우리 모두의 언어다'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됐을 정도다.

극 중 유타카(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약혼녀 미츠코(이사다 유리코)와의 결혼을 앞둔 완벽한 인물이다. 여자들을 단숨에 홀리는 미소와 일에 대한 추진력 그리고 자신만만한 야망까지 모든 것들이 남부러울 것 하나없는 호청년(好靑年)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유타카의 인생은 절친의 여자인 토우코(나카야마 미호)를 만나면서 급변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유혹하는 토우코와의 관계가 단순한 육체적 끌림이라고 생각했던 유타카는 이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이 잦아질 수록 약혼녀보다 토우코를 더욱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괴로워한다.

"전 세계의 하늘을 자신의 비행기로 뒤덮고 싶다"는 야망을 가진 남자 유타카, 그리고 "당신의 꿈에 반했다"는 매력적인 미호간의 사랑은 유타카의 호청년이라는 속박과 허울에 의해 비극적으로 끝나게 된다.

25년 후 유타카는 그토록 원하던 그 꿈을 이뤘지만 자신이 이룬 모든것을 친구에게 양보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오랜세월 동안 만나지 못한 그들에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 속에서 "죽기 전 사랑했던 기억과 사랑받았던 기억 중 어떤 기억을 더 떠올리고 싶은가?"라는 대사는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어쩌면 이 대사는 유타카와 관객 모두에게 공허한 울림에 그칠지 모르겠다. 유타카에게 죽도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은 하나일테니 말이다.

영화는 야구공과 벤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물건 속에 한 남자의 성공, 사랑, 그리고 추억을 모두 담았다. 20년 넘도록 가슴 속에 담아둔 고집있는 남자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 사이의 사랑은 관객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야구공과 벤츠 사이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133분짜리 이 영화를 추천한다.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두 물건이 당신의 눈과 가슴을 적셔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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