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 세게드(Szeged)의 피크(Pick) 살라미 공장 안을 견학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19일 기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우선 ‘최근 2주 안에 전염병에 걸린 적이 있느냐’ 등 6~7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하고, 기술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서명을 해야 했다. 그 후 멸균 작용을 하는 특수 겉옷과 재킷을 입고 모자를 쓴 다음 머리카락이 모자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다시 거즈같은 얇은 천을 모자 위에 덮어 쓴다. 손을 멸균 기계에 넣어 여러 번 소독하고, 신발 밑창을 특수 소독약품으로 씻어낸 뒤 다시 그 신발 위에 비닐로 된 신발 덮개를 씌우고서야 입장이 가능했다.

이렇게 철저한 위생 정신은 지난 1869년 설립된 이래 14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는 피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다. 현재 피크가 생산하는 돼지고기와 소시지, 라드(돼지 기름), 살라미 등 제품 가짓수는 80여 가지. 연간 생산량 7400?에 가 가운데 60%인 약 4500?을 독일·오스트리아·체코·미국·일본 등 전 세계 7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헝가리 식품기업으로서는 규모가 가장 크고, 피크의 대표 상품인 살라미는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높다. 이미 1900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동메달을 수상한 적도 있다.

살라미는 돼지고기에 기름·소금·향신료 등을 넣고 건조시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소시지의 일종으로, 원조는 이탈리아이지만 피크의 창업주인 마크 피크는 이탈리아에서 배운 살라미 제조법을 헝가리식으로 변형시켰다. 이 나라 명물 가운데 하나인 파프리카를 넣은 꼴바스(Kolbasz)라는 독특한 메뉴의 살라미를 개발한 것이다. 헝가리 국제공항 면세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이다.

헝가리 살라미 공장.

하지만 그 외에도 헝가리식 살라미는 다른 지역 제품과 몇 가지 면에서 다르다. 우선 피크의 살라미는 헝가리 고유의 식육 돼지 망갈리차(Mangalica)만을 사용한다. 도보 가보르(Dobo) 살라미 제조 매니저는 또"이탈리아독일 살라미는 그냥 말리는데 비해 우리는 '쪄서' 말리는 방법을 쓰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 내부의 한 저장고로 기자를 데려갔다. 그곳엔 뼈를 발라낸 돼지 살코기를 컨베이어 벨트 종업원들이 잘게 자르고 손질한 후 기계로 다지고 압축시켜 아래 위가 가늘고 길쭉한 모양이 된 연한 핑크색 살라미 소시지가 저장실 한 가득 걸려 있었다. 저장고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의 정체는 오동나무 숯.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동나무 숯을 사용하는 것이 살라미에 숯 냄새가 심하게 배지 않으면서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데 가장 좋다는 사실을 발견해서다. 이렇게 14일 건조를 시켜 단단하고 표면이 하얗게 변한 살라미는 제2 저장고로 옮겨져 20% 습도에서 다시 약 80일간 건조시킨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살라미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기 때문에 모든 살라미를 일일이 수시로 관찰하고 곰팡이를 벗겨낸다고 했다. 이 작업을 전담하는 직원만 10명이다.

도보 매니저는 “일반 살라미에 비해 우리 제품은 참으로 사람 손이 많이 갑니다. 살라미 하나를 만드는 데도 100일이나 걸리고요. 이탈리아 등에서 이런 방법을 적용해 보려 해도 막상 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이 들어가는만큼 살라미 맛이 깊어진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화된 설비와 사람의 손길이 적절하게 조화됐다는 점 외에도 피크 살라미의 성공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독특한 향신료다.
살라미는 오동나무 숯 건조실에 보내기 직전에 소금·파프리카·후추 등이 배합된 양념으로 간이 맞춰진다. 이 향신료 제조법을 아는 사람은 1800명 공장 직원 가운데 단 두명. 공장 한켠의 작은 방에서 소금과 후추 무게를 달고 있던 사르세기 졸탄(Sarszegi)은 "1995년부터 이 일을 했다"고 말했다. '양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회사는 가장 믿을만하다고 판단되는 직원에게 이 임무를 맡긴다고 한다. 사르세기는 "이 일을 하는 직원은 다른 부서로 순환 근무를 하는 일 없이 퇴직 전까지 양념 배합만 책임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크 살라미는 부드러우면서도 짭짤하고 쫄깃쫄깃해 입 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조금씩 잘라서 술 안주로 곁들여 먹기에 좋고, 헝가리에선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도 인기라고 했다.

노베르트 팔라노비츠(Norbert) 아시아지역 피크 마케팅 담당자는 "일본에선 몇 년 전부터 이미 피크의 돼지고기 상품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헝가리 돼지고기 상품과 살라미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