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5시 연천군 전곡읍 전곡고등학교 기숙사 예지관(禮智館). 학교 수업이 끝나자 80여명의 학생들이 기숙사에 마련된 자율학습실로 몰려와 지정석에 앉았다. 자율학습실 옆 원격사이버학습실에서는 30여명의 학생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EBS 강의를 듣고 있었다. 30㎡(약 10평) 크기의 스터디룸 5곳에서는 학생들의 영어 토론이 한창이었다. 36년이나 된 시골학교에 마련된 '최신식' 기숙사는 오전 1시가 되도록 이렇게 분주했다.

전곡고의 변신이 눈부시다. 기숙사를 중심으로 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연천군을 떠나려던 지역 인재들뿐만 아니라 도시 학생들까지 모이기 시작했다. 올해 신입생 350명(자동차과 105명 포함) 중 35명이 고양·의정부 등에서 온 학생들이다. 남양주에서 온 김효진(16)양은 "부모님 권유로 오게 됐는데 근처 학교에 가는 것보다 사교육비도 덜 들고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교사 이우남(48)씨는 "2002년엔 중학교 졸업생 중 상위 10%의 80%가 연천을 떠났지만 이제 그 수도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연천군 전곡고는 시골학교답지 않은 활력이 넘쳤다. 기숙사 예지관에서는 학생들이 늦은 시간까지 자기주도학습에 빠져 있다.

전곡고는 1974년 3개 학급으로 시작해 1991년 실업계가 포함된 전곡종합고등학교가 됐다가 2001년 지금의 전곡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허벌판 돌밭 한가운데 세워졌던 전곡고의 변신은 2003년 경기도 지역거점 중심학교로 선정되면서부터 시작됐다. 학교는 23억원을 지원받아 2005년 124명 규모의 기숙사인 예지관을 열었다. 이곳에 마련된 스터디룸을 중심으로 원어민 외국어특강, 논술 특강 등 사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다양한 맞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영어만 쓸 수 있는 영어 전용교실을 만들고 도서관도 리모델링했다.

그 결과 2005년 서울대 합격생을 낸 이후 꾸준하게 명문대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올해엔 연천군 최초로 카이스트 합격생이 나왔다. 서울대에 1명, 연세대고려대도 5명이 진학했다. 4년제 대학 진학률(자동차과 포함)도 2005년 34%에서 올해는 67%로 크게 높아졌다.

학업 외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교과부 주최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경기도 주최 학생인권의식함양작품공모전 등 각종 대회에서 수상했다.

전곡고의 변신에는 교직원과 지역사회, 동문회의 헌신이 큰힘이 됐다. 97명의 교직원 중 20여명이 연천군에서 마련해준 사택에 머물며 밤낮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에서 온 국어교사 김효정(25)씨는 "기숙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방학이나 주말에도 학교에 나온다"며 "도시 학교에서 보지 못한 초롱초롱한 눈빛에 타향 생활이 어려워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교직원들은 매월 1만원씩을 모아 학기마다 학생 20여명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실습동에서는 자동차과 학생들이 교사 이우남씨와 함께 자동차 엔진 실습에 열중이다.

지역 인재들을 지키려는 연천군과 지역사회의 투자도 줄을 잇고 있다. 연천군은 전곡고에 2003년부터 모두 14억7200만원을 지원했다. 지역 장학회와 병원 등에서 주는 장학금도 1년에 6000만원에 이른다. 1만2000여명에 이르는 전곡고 동문들은 졸업식과 입학식 때마다 장학금을 챙긴다. 윤종훈(52) 동문회장은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명문대에 합격하는 후배들을 보며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오는 8월 1억원 규모의 장학기금 마련에 발벗고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전곡고는 또다른 경사에 들뜬 분위기다. 다음달 1일 예지관 옆에 140명 규모의 새 기숙사가 문을 열기 때문이다. 새 기숙사인 명지관(鳴智館)이 개관하면 기숙사의 혜택을 받는 학생이 모두 264명으로 늘게 된다.

명지관은 전곡고가 2008년 기숙형 공립고에 선정되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50억원을 지원받아 건립됐다. 경기도에서는 전곡고를 비롯해 가평고·양평고·여주여고가 함께 뽑혔다.

지난 2008년 동두천외고에서 부임한 한희용(57) 교장은 "동두천외고를 키워낸 경험을 바탕으로 전곡고를 다른 지역 인재들도 부러워하는 학교로 만들 것"이라며 "기숙사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