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이진호 기자] 매서운 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던 지난 19일, 경상남도 합천에서는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1950년 6월 우리 민족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또 다른 한국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

총성과 포성이 울려 퍼지는 현장 속에서 수십여 명의 인민군 앞에 선 차승원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고 권상우, 탑, 김승우는 분주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실제를 방불케 하는 시가전을 펼치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카리스마 배우 4명은 검게 그을린 얼굴과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로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그렇다면 38선도 아닌 포항에서 남과 북이 마주한 이유는 뭘까? 해답을 알기 위해 스포츠조선 T-뉴스는 19일 오후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서 촬영 중인 영화 '포화 속으로'(감독 이재한,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로 뛰어들었다.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30분. 북한 군복을 입은 한 무리가 포항시에 진입해 학도 복장을 한 이들과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다. 제작진은 이날 장면이 "1950년 8월의 포항 시내에서 벌어진 북한군과 남한군의 치열한 전투를 재현한 것"이라고 했다.

'포화속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현장에 뛰어든 학도병 71명의 슬픈 실화를 다룬 영화다. 제작비만 113억이 들어간 초대형 전쟁 블록버스터.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큰 돈이 쓰였는지 체감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이날 현장은 아스팔트 찌꺼기를 불에 태워 나는 퀴퀴한 냄새와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고, '자유를 빼앗는 괴뢰당 물리쳐라', '조국을 팔아먹는 괴뢰도당' 등 결의에 찬 현수막이 건물 곳곳에 걸려 있었다. 포항 시내로 재현된 가건물에는 당시 뿌려졌던 삐라가 붙어 있어 마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60년전 그때로 시곗 바늘을 되돌린 느낌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북한군이 쓰던 소총과 국방부에서 빌려온 실제 전차와 60 등의 연발 총은 모두 고증을 거쳐 공수해온 것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113억이란 제작비가 피부로 와 닿았다. 실제 현장의 상황도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인데 스크린상에서 구현되는 장면은 어마어마할 듯했다.

이내 귀를 찢을 것 같은 총성이 울렸고 배우들은 현장 진행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시가전 신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이 집중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차승원은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로 현장을 압도하고 있었고, 권상우, 탑, 김승우는 검은 분칠과 피투성이가 된 의상에도 한 눈에 띄는 외모와 연기 내공을 뽐내고 있었다.

'포화속으로'는 지난 12월에 처음 촬영이 시작된 이후 지금껏 한번의 문제도 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 좋고 입담 좋은 김승우, 차승원이 포진해 있고 이들을 따르는 권상우와도 탑이 한데 뭉쳐 두터운 의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촬영 현장 분위기는 늘 훈훈하고 즐거웠지만 그곳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배우들은 극 중 배경이 8월인 관계로 1~2월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군복을 입고 촬영에 임해야했다. 실제로 현장 공개 당일에는 날이 많이 풀렸음에도 탑은 두꺼운 점퍼를 입고 대기하는 모습을 보여줘 그간의 추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주연 배우들이 추위와 사투를 벌인다면 500명이 넘게 동원된 보조 출연자는 잠자리와 샤워 문제로 고투를 펼치고 있었다. 한 보조 출연자는 "70여명의 보조 출연자들이 서울에 모여 일주일에 두번 씩 경남 합천으로 촬영을 온다"며 "서울에서 새벽 한 시에 출발해 다섯 시 쯤 도착, 촬영 후 다시 다섯 시에 서울로 곧바로 돌아가기 때문에 씻지 못하는 고통과 잠자리를 가장 큰 애로점"이라고 전했다.

주연 배우들은 거의 현장에 상주하며 촬영을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당일 촬영 후 복귀하는 보조출연자들에게 잠자리는 큰 고통인 듯 했다. 전쟁 영화라는 특성상 피 분장은 필수였고, 손과 얼굴에 검은 분칠 때문에 이들의 고통은 더더욱 가중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보조 출연자들의 표정은 늘 밝았다.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서로 모여 자신들이 맡은 역과 동선을 미리 연구하고 있었고, 평소에는 권상우와 함께 제식훈련을 할 정도로 영화에 열정을 가졌다. 주연 배우들의 노력과 보조 출연자들의 열정이 '포화속으로'란 또다른 대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71명의 학도병과 수천의 사단 병력의 대치,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작은 승리. 영화에서나 일어날법한 이 이야기가 실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한 감독은 "잊혀져가는 그들의 희생 정신을 영화 속에 담아 다시한번 되새겨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영화 구상 의도를 밝혔다. 영화적 재미뿐만 아니라 잊혀져가는 숭고한 정신을 다시 기리겠다는 메시지를 담겠다는 의지.

6ㆍ25 발발 60주년을 맞아 조국을 위해 희생했던 이름없는 학도병들의 숭고한 정신은 오는 6월 우리의 눈과 마음을 또다시 적셔줄 듯 하다.

<zhenhao@sportschosun.com, 사진제공=태원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