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이모(13)양의 사체가 발견된 부산시 사상구 덕포1동 사건 현장. 밤 9시경 주민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이곳은 치안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었다.

지난 3월 10일 밤 8시 부산시 사상구 덕포1동 대로변. 여중생 이모(13)양 납치살해 사건의 피의자인 김길태(33)가 이날 오후 덕포시장 한 건물 옥상에서 검거된 후인지라 이 일대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사건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건 젊고 건장한 사내였다. “술 한잔 하고 가시렵니까?”

부산에서 ‘뽀뽀로마치’라고 불리는 길거리의 술집 호객꾼들도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일대 ‘뽀뽀로마치’들은 김길태 검거 작전이 벌어지는 동안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기자 호객 활동을 접고 ‘김길태 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이들이 현상금을 노리고 빈집을 ‘수색’하는 통에 한때 동네가 소란스러웠다고 한다.

대로변 상점과 식당들도 활기를 되찾았다. 사건이 발생한 2월 28일 이후 밤 8시만 되면 유동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문을 닫는 가게가 많았지만 김길태 검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덕포시장 내 한 음식점 여주인은 “범인이 잡히기 전에는 길거리에 경찰 외에 사람이 없었다”며 “오늘은 제법 아줌마들이 몰려 나왔고 길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김길태가 성장하고 범죄를 저지른 덕포동 일대는 1980년대 초반 국제상사 등이 자리를 잡으면서 신흥 공장지대로 급성장한 곳이다. 공장으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임시 주거지가 형성되면서 이 일대는 이른바 ‘달동네’로 변했다. 사건이 발생한 덕포1동(사상고갯길)도 그렇게 해서 조성된 주거지역이다. 어슴푸레한 가로등과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차량 진입은커녕 두 사람이 동시에 걷기조차 힘든 구조다. 골목길 주변으로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마치 미로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덕포1동 치안센터 김경휘 경사는 “국제상사 등이 있을 적에는 인구가 많아 방석집, 사창가도 꽤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공장이 사라지면서 덕포동 일대에 빈집이 늘기 시작했고 지금은 두 집 중 한 집은 비어있다. 순찰을 돌 때면 음침한 기운이 돌아 기분이 나쁠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3월 11일 사상초등학교 등굣길에 남아있던 공개수배 전단을 어린 초등학생들이 무심코 밟고 지나치고 있다.

이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주민들은 4년 전 발생했던 살인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9년째 덕포 1동에서 슈퍼를 운영해온 한 주민은 “4년 전 청소년들이 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이불에 싸서 빈집에 밀어 넣고 도망친 사건이 발생했었다. 여자들은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사상고갯길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 현장은 이번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다.

경찰과 동행해 이양 살해 현장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골목길을 지나는 행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찰관은 “여기는 밤에 한번 찾아왔다가 다시 나가려 해도 찾기 어렵다”며 “막혀 있는 듯한 좁은 골목길이 통로로 쓰여 미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경찰은 덕포동 일대를 도보로 순찰하고 있지만 가장 범죄가 우려되는 사상고갯길을 수시로 찾기란 인력 구조상 쉽지 않다고 했다. 살해된 이양의 집과 사체가 발견된 현장은 걸어서 채 1분도 소요되지 않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지만 주변 주택들이 사람이 사는 집인지, 빈집인지 알기가 어려워 경찰도 이양이 실종된 지 11일 만에야 사체를 찾아냈을 정도다. 사건 현장 주변에는 사상초, 사상여중 등 학교들이 있지만 청소년들은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주민들은 덕포1동 일대에 대한 재개발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상고갯길에는 요즘 보기 힘든 공동화장실이 있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우범지대로 전락한 이 지역을 방치할 경우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사상경찰서 한 관계자는 “덕포동 일대는 소득 수준이 낮아 재개발 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집주인과 현재 거주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자는 다음날인 11일 오전 8시30분 다시 사상고갯길을 찾았지만 여전히 인적이 뜸했다. 1시간 넘게 서있었으나 아침 등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골목길로 다니는 학생들은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고갯길 아래로 부모의 손을 잡거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등교하는 굳은 표정의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던 덕포동은 여전히 사상고갯길 ‘살인의 추억’에 짓눌려 있었다.

경찰은 이양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 현장의 접근을 차단했다.
덕포동 주민들이 말하는 김길태

초등학생 땐 온순… '버려진 아이' 알고나서부터 이상해져

덕포동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은 초등학교 때 김길태를 '착실한 학생'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길태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 역시 김씨가 친구들한테 치일 정도로 온순한 스타일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유독 여자 친구들을 괴롭히곤 했다고 한다.

김길태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을 만큼 그와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지하철 덕천역 주변 식당 여주인은 “길태는 아들 녀석과 친구였는데 다들 길태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 한 동네에 있고 살인사건까지 저지르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는데 도통 눈에 띄질 않았다. 아들 얘기로는 길태 주변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김길태는 중학교 입학 무렵 자신이 부모에게 버려져 양부모에 의해 양육된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의 양부모는 종손 집안이었지만 2명의 딸만 낳고 있던 터라 ‘버려진 김길태’를 선뜻 입양해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덕포시장의 한 상점 주인은 “김길태의 양부모가 주변에 살고 계신다. 길태가 중학생이 된 후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상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길태의 양부모는 김씨가 교도소를 들락거릴 때 영치금을 넣고 면회를 꾸준히 다니면서 그를 훈육하는 데 정성을 들여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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