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20년 넘게 거리 공연을 하는 스님들이 있다. 충남 공주 마곡사 범진(梵眞·69) 스님과 충남 예산 수덕사 월연(月淵·65) 스님은 한두 달에 한 번 속세(俗世)에 나와 대중가요를 부르고 불교 음악 범패(梵唄) 공연을 하며 흥겨운 공연 보시(布施)를 한다.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문화거리에서 회색 승복을 입은 두 스님이 10m쯤 되는 광목 위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심우도(尋牛圖·소를 찾는 동자승 그림)를 다 그린 범진 스님이 월연 스님에게 "아우야, 이제 노래나 한 번 불러볼까?"하고 외쳤다. 달마도(達磨圖)를 그린 월연 스님이 검정 가방을 열고 하모니카를 꺼내 들고 '찔레꽃'을 연주하자 범진 스님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으로 이어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몰려들었다. "아, 배호씨가 울고 가겠네 그려!" 노래를 듣던 한 시민이 흥이 난 듯 소리쳤다.

두 스님이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위해 20년 넘게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월연 스님이 부는 하모니카에 맞춰 범진 스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월연 스님 노래가 끝나자 범진 스님이 범패를 선보였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착한 맘도 염불이고 부모님께 효도함도 염불이고…"로 시작된 소리는 북 장단에 맞춰 30분간 계속됐다. 월연 스님은 옆에서 하모니카 반주를 넣었다.

스님들의 공연은 범진 스님이 1980년대 초 서울 종각을 지나가다 본 가수 '수와 진'의 심장병 환자돕기 공연이 계기가 됐다. "내가 할 일을 저 사람들이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스님은 마이크를 빌려 30분간 '회심곡'과 '칠갑산' 등을 불렀다고 한다. 스님은 그 뒤 막역한 사이인 월연 스님을 찾아 "남을 위해 봉사해 보자"고 했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두 스님은 이따금 범진 스님이 있는 마곡사 산자락 암자에서 공연 연습을 한다. 다른 스님들이나 불자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공연에서 모은 성금으로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를 한다. 지금까지 5000만원 정도 모아 보시를 했다고 한다. 이날도 연꽃 모양 모금함에 약 55만원이 걷혔다.

두 스님은 다음 달 3일에는 기독교 목사와 가톨릭 신부들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 앞 거리에서 '평화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범진 스님은 "세상이 편안해지려면 종교지도자들부터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