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이모(13)양이 김길태(33)에게 납치돼 성폭행당한 후 이틀 안에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사건 수사본부장인 김희웅 부산 사상경찰서장은 12일 오후 브리핑을 갖고 "이양의 시신이 있었던 물탱크 안과 그 옆 빈집의 고무대야에서 발견된 석회가루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양의 사망 시점이 지난달 26일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동안 오리무중 상태였던 이양 사망 시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첫 실마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서장은 이와 관련, ▲지난 6일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물탱크 안엔 시신 위장을 위해 석회가루가 뿌려져 있었고 ▲물탱크로부터 5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옆 빈집(김길태가 도피 중 잠을 잔 적이 있음)의 고무대야에 석회가루가 담겨 있었으며 ▲김을 잡기 위해 이 일대를 수색하던 경찰은 지난달 26일 오전 10시49분과, 이양 시신 발견 후인 지난 6일 오후 11시에 각각 이 고무대야를 카메라로 찍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두 눈 똑바로 뜬 김길태… 12일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 사상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김 서장은 "물탱크와 고무대야 석회가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성분 의뢰했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석회가루가 동일한 것으로 나올 경우 김이 이 빈집의 석회가루를 이양 시신에 뿌린 게 된다. 그럴 경우 사진에 찍힌 고무대야 석회가루의 양이나 형태가 2월 26일이나 3월 6일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이 석회가루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석회가루가 김의 살해 행위, 범행 시점을 입증할 결정적 단서가 되는 셈이다.

경찰의 이런 추정은 다른 정황 증거와도 연결된다. 먼저 이양이 납치돼 성폭행과 살해를 당한 장소는 자신의 집에서 30~50m도 채 안 떨어진 자기 동네다. 인근 주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이양을 오랫동안 감금하거나 끌고 다니기 힘든 상황이란 얘기다.

또 김은 지난 1월 강모씨 성폭행 사건으로 수배돼 담을 넘고 벽을 타고 내리면서 도망 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생라면이나 훔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제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든 처지였다. 그러니 이양이란 '혹'을 달고 오랫동안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란 게 경찰 시각이다.

경찰은 이와 함께 김이 지난달 25일 오전 10시쯤 만취한 상태에서 교도소 동기였던 김모(33)씨에게 7차례 전화를 걸어 "너한테 할 말이 있다"는 등 하소연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정황 증거로 보고 있다. 이양 살해 후 복잡한 심경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이양 시신 부패 정도가 심하지 않아 사망한 지 며칠 안돼서 발견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의 경우 이양이 납치된 지 7~8일 지난 3월 2~4일 살해됐을 것이란 추정이다. 하지만 "따뜻했던 부산 날씨가 당시 갑작스럽게 추워졌기 때문에 부패가 빨리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란 반론이 만만찮다. 실제 부산 날씨는 이양이 납치된 2월 24일 최저 섭씨 7.9도, 최고 섭씨 18.4도였지만 이후 점차 내려가 3월 4일엔 최저 7.2도, 최고 8.8도로 급격히 떨어졌다.

또 이양 시신에 뿌려진 석회가루가 부패 방지 효과를 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양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양 시신 발견 장소가 물탱크 속이었고, 시신에 횟가루가 덮여 있는 등 다양한 변수가 많아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탓이다.

부산대 법의학연구소 허기영 소장은 "시신의 사망 시점을 추정하는 방법은 수십 가지가 있다"며 "그러나 사망 후 시간이 3일 이상 흘렀을 경우 믿을만한 측정법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