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한 방에 아이들을 10명씩 몰아넣다니, 이건 수용소 아닌가요?" "저보다 내신성적이 낮은 친구도 붙었는데, 저는 왜 떨어졌나요?"

지난해 11월 말 경기도 시흥의 실업계 학교인 한국조리(調理)과학고등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글이 수십 건 올랐다. 수상하다고 판단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결과, 학교에서 생길 수 있는 온갖 비리들이 다 드러났다.

경찰은 11일 교장 정모(73)씨와 교무부장 이모(45)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비리에 가담한 교직원과 납품업체 대표, 도의원 등 3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정 교장은 지난해 박모(44)씨를 영어교사로 채용해 주는 대가로 5000만원을 받았다. 지금까지 8명의 교사로부터 1인당 500만~5000만원씩 받아 2억3000만원을 챙겼다고 경찰은 밝혔다. 정 교장은 미리 점 찍어둔 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다른 지원자들을 서류평가 단계에서 모두 떨어트렸다. 필기시험의 문제도 지원자가 직접 출제하고 풀도록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정 교장은 또 기숙사 사물함 교체 명목으로 받은 국고보조금을 모두 빼돌리고, 다른 학교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사물함을 공짜로 가져와 들여놓았다. 기숙사에선 학생 10명을 한 방에 몰아넣었다. 그런 식으로 횡령한 보조금과 학교운영비가 3억1000여만원이나 된다.

경찰 관계자는 "정 교장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3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구입하는가 하면 정치인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장은 지난해 2월 학교에 대한 예산 지원 청탁과 함께 경기도 의회 황모(50) 의원의 사회단체 강의 수강료 400만원을 대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시비리 의혹도 제기됐다. 합격선에 든 학생 15명을 떨어뜨리고 불합격자들을 붙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2010학년도 신입생 240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교장의 지시를 받은 교감 정모(54)씨와 교무부장 이씨가 교사 16명을 동원해 합격자 15명의 면접 점수를 1~7점씩 깎아 떨어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합격시킬 대상자들의 면접 점수는 1~13점씩 올렸다. 그래도 합격선 안에 들지 못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교사가 OMR 카드를 다시 작성해 평가 점수까지 올려 합격시켰다.

점수조작으로 불합격된 학생 어머니인 박모(40)씨는 "어렸을 적부터 아들 꿈이 요리사였다"며 "비리 때문에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나도 아이도 잠을 잘 못 이룬다"고 했다.

이런 입시부정에 대해 정 교장은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남학생들이 대학진학과 취업에 유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입시를 지휘한 정 교장의 변명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불합격자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합격시켜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