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가명·26)는 받을 수 없어요. 시설에 입소하는 가장 빠른 길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던가 민호를 버려 '무연고자'로 만드는 겁니다."

강희선(가명·54·서울 봉천동)씨가 지난해 경기도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 원장에게 들은 말이다. 강씨는 자폐장애 1급인 아들 민호씨가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장애인 생활시설을 찾아다녔지만 10여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모두 "(빈자리는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자가 우선순위라 일반 입소자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 보조로 무상으로 장애인 생활시설에 들어갈 수 있지만 차상위·중산층 등 실비(實費·이용비)를 내는 가정의 장애인들은 오히려 갈 곳이 없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강씨는 "한 시설에 갔더니 정원의 절반도 안 찼는데도 기초수급자와 실비 입소자가 7:3의 비율로 입소를 해야 한다면서 1년 넘게 그냥 내버려두더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자폐 장애인 김모(25)씨가 복지관 수업을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마중나온 어머니가 아들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6년간 아들을 받아줄 시설을 찾아 안산·가평·수원·목포 등 전국을 돌아다녔다. 개인이 운영하는 한 시설은 1억원을 일시불로 지불하라고 했고, 한 곳은 600만원 보증금에 매달 50만원의 생활비를 내라고 했다. 강씨는 "곧 남편이 은퇴하는데 100만원 남짓한 연금 받아서 아이 생활비 50만원을 보내면 어떻게 살겠느냐"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지원과에 문의하니 "기초수급자 우대원칙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과거에는 '기초수급자를 최소 70%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2000년대 초 장애인 생활시설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로 바뀌면서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성만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은 "2005년 장애인 복지사업이 지자체로 이양됐는데 아직 관행적으로 기초수급자를 우대하는 지자체가 많다"고 말했다.

민호씨는 다행히 지난해 말 서울에서 4시간 거리 지방의 A생활시설에 들어갔다. 주소지를 시설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강씨가 수차례 고개를 조아린 끝에 가능했던 것이다. 강씨는 "무척 감사하지만 A시설 역시 기초수급자를 우대하고 있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시설은 40명 정원에 현재 12명(기초수급자 10명, 일반 입소자 2명)이 입소한 상황인데 최근 1명의 중증 자폐인 일반 입소자는 한 달간의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시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돌보기 쉬운' 장애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강씨는 "민호도 탈락할 위기였지만 '좀 더 지켜보자'며 조건부로 통과했다"고 전했다.

복지부에 등록된 자폐장애인은 1만3956명(2009년 6월)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합치면 자폐장애인은 총 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자폐(autism)장애
사회적 상호작용·의사소통이 어렵고 특정 분야에만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장애. 지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개인마다 자기 관심분야에만 빠져 소통이 안 되고 폭력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초원이,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 김진호군 등이 자폐장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