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브레의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아무런 존재가 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는 둥그스름하고 앙증맞은 작은 케이크, 즉 세로로 홈이 파인 조개껍데기 모양의 예쁜 마들렌을 주셨다. 기력이 빠진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고 마들렌을 적신 차를 조금 맛보았다. 케이크 부스러기가 섞인 따뜻한 차가 입천장에 닿자마자 나는 이내 몸서리쳤다.… 갑자기 그 맛이 기억났다. 그 맛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에 먹는 작은 마들렌 조각의 맛과 비슷했다…. 곧 이모의 방이 있는 거리 위쪽의 오래된 잿빛 집이 작은 현관과 분리된 무대처럼 우뚝 치솟았다….〉〉
상당수가 읽은 척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읽지 못한 명작이 꽤 있다. 번역본으로 무려 11권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그런 소설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1871~1922)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프로이트 이후 새롭게 개척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구다. 대체 이 몽상적인 소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마르셀 프루스트와의 가상대화로 그를 살짝 엿보자.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 용어만 들어도 벌써 졸음이 밀려옵니다. 마들렌 얘기만 봐도, '마들렌과 홍차, 먹으니 옛날 생각나더라' 하면 될 것을 뭘 그렇게 어렵게 얘기합니까.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 같은 작품들을 읽다가 수많은 영문학도가 깊은 잠에 빠지는 걸 나도 알고 있네. 그나마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비교적 쉬웠지. 하지만 말이야, 그런 문장을 읽어내야만 비로소 문학, 인생의 정수(精髓)에 다가설 수 있지."
―정수라니요?
"인간의 기억이란 나쁜 화가가 잘못된 색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엉터리야. 나쁜 화가의 그림이 살아 있는 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과 같아. 반면에 냄새나 맛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환기시켜 주네. 예술가는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오른 불수의적 기억을 통해서만 자기 작품의 원재료에 다가설 수 있소. 불수의적 기억은 진정성의 지표가 되는 것이오."
―설명이 더 어렵네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를 통해 당신 소설이 알려졌지만, 읽다가 포기한 사람이 많지요. 차라리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가 훨씬 당신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은데. 당신은 정말 누구였나요? 어머니에게 '엄마, 오줌 눌 때 느껴지는 쓰린 듯한 느낌 때문에 중간에 멈추고 다시 시작하길 15분 동안 5~6번을 해야 하는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빠에게 여쭤보세요' 식으로 편지를 쓴 게 당신인가요?
"나는 평생을 아팠지만, 엄마를 빼곤 대개 귀 기울이지 않았어. 병약함을 증명해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었지. 게다가 앙드레 지드는 나를 사교계나 기웃거리는 팔푼이라 생각하고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내 책의 출판을 거절했고. 어쩌면 지금의 과도한 관심만큼이나 생전에 홀대받았던 게 나였지."
―'프루스트 효과'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냄새를 통해 과거의 일을 기억해내는 현상 말입니다. 2001년 필라델피아 모넬화학감각센터의 허츠(Herz) 박사팀은 사진과 냄새를 동시에 보고 맡게 한 뒤, 나중에는 둘 중 하나만 경험하게 하는 실험을 합니다.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사진만 볼 때보다는 차라리 냄새만 맡았을 때 과거 일을 더 잘 기억해냈다 합니다.
"내가 비밀 하나를 알려줄까. 〈늙은 요리사가 가져다준 토스트 한 조각을 차에 적셨을 때, 나는 제라늄과 오렌지 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행복이 주는 아주 특별한 빛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 여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차에 적신 비스코티를 맛보는 순간 내 앞에는 모호하고 무채색인 정원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댁의 침실…〉 이런 글도 쓴 적이 있어. 토스트 대신 마들렌, 할아버지 대신 레오니 숙모여야 할 듯하지? 소설 '장 상테유'에선 새로 빤 침구를 통해 바다 냄새로 이어지는 기억을 말했어. 마들렌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감각이란 얘기야."
―소설에도 고급 음식이 자주 인용되지요.
"치즈 수플레, 검정 버터를 바른 홍어, 라즈베리 무스, 초콜릿 수플레 같은 요리는 오감을 자극하면서 묻혀 있던 먼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니까."
―감각, 그중에서도 냄새는 참 묘한 것 같아요. 냄새는 그 자체로 표현되지 못하고, '마늘 냄새', '갓구운 빵 냄새'처럼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될 수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냄새는 이미지를 상징하오. 조지 오웰은 '하류 계급의 냄새(The lower classes smell)'에 대해 분석했어. 그는 인종적 혐오감, 종교적 적개심, 심지어 도덕률의 차이도 극복할 수 있지만, 입 냄새가 지독한 사람에겐 호감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소. 그는 또 부르주아 계급이 하류 계급을 게으르고 상스럽고 거짓말쟁이라 믿고 자란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들이 '더러운 존재' '냄새 나는 존재'라 믿고 자라는 건 더 치명적이라고 주장했어. 계급에 대한 혐오감을 뼛속 깊숙이 심는다는 얘기지."
―냄새는 결국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소. 미국인들이 옆집에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경찰에 신고하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옆 중국인 집에서 고양이를 끓여 먹는 냄새가 나요' '옆집에 사는 인도사람 음식 냄새를 견딜 수 없어요' 같은 거요. 서머싯 몸 역시 '신분이나 재력, 교육 수준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계급을 나누는 것은 아침 목욕 여부'라고 말한 적이 있다오. 캄보디아 보트 피플이 미국에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받는 교육 중에 목욕을 통해 불쾌한 냄새를 지우는 법, 음식을 할 때 냄새 피우지 않는 법이 들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요. 억울해하진 마시오. 독일인·유대인들도 유럽에선 마찬가지로 '냄새 나는 족속'들이라는 악명을 얻은 적이 있으니까."
―오늘날 향기 산업은 결국 그런 정치성의 산물인가요.
"'부유층이 되는 느낌'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느낌'을 파는 향수 산업과 유사 향기산업은 나날이 커지고 있지. 냄새를 맡는다는 건 결국 욕망한다는 것이요, 향기를 파는 건 결국 상승 욕구를 파는 것이니까."
● 조개 모양의 작은 케이크 '마들렌'
마들렌(madeleine)은 조개 모양으로 된 작은 케이크로 맛은 파운드 케이크와 비슷하고 듬뿍 들어간 버터와 레몬 향이 특징이다.
마들렌은 프랑스 북동부 코메르시(Commercy)에서 유래한 빵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졌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역사가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첫 번째 설은 프랑스의 루이 15세(1710~1774)의 작명설. 그가 폴란드 왕인 스타니슬라스 리스친스키의 딸 마리 레슈친스카와 결혼하면서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당시 먹었던 빵에 아내의 이름을 붙였다는 설, 혹은 장인의 요리사였던 마들렌(Madeleine Paulmier)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설이 존재한다. 좀 다른 '버전'도 있다. 리스친스키 왕이 코메르시로 유배 왔을 때, 자신의 시중을 들던 하녀 마들렌(Madeleine)의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이 외에도, 나폴레옹을 정계에 입문시켰다가 후에 그와 정적이 된 탈레랑 공(Prince Talleyrand·1754~1838)의 요리사였던 장 아비체(Jean Avice)가 발명했다는 설, 18세기 '성 마리 마그델렌(St. Mary Magdelen)'수녀원 수녀들이 프랑스 혁명기 중 형편이 어려워져 제빵 레시피를 제과점에 팔면서 '마들렌'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 참고자료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드 보통
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The Smell Culture Reader. Jim Drobnick
The Genealogy of Values:the aesthetic economy of Nietzsche and Proust. Edward Andrew
Aroma. Constance Cla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