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학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금화 발행을 검토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단합해 20억달러 외화를 차입하는 효과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월 22일 보도
전 사장이 언급한 금화는 순금 기념주화를 말한다. 금화에 대한 수요가 많은 호황기에 발행해놓으면 불황 때 시장에 흘러나와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시점에 금화 발행을 화제로 올린 이유는 뭘까.
작년 6월부터 발행된 5만원권과 관련이 있다. 5만원권이 나오면서 1만원권 신권 발행량이 줄어 결과적으로 연간 10억장 정도이던 지폐 발행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조폐공사 입장에선 일감이 절반으로 준 셈이다.
당초 조폐공사는 올해 지폐를 최소 8억장 이상 발행할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은행이 1만원권의 재고가 많다는 이유로 반대해 5억장을 발행하기로 하는데 그쳤다. 발행량이 줄면서 조폐공사의 손실도 커졌다고 한다.
5만원권 한 장당 210원을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다고 제안했지만 실제로 받은 건 장당 185원밖에 안 되는 데다 시제품을 만들 때 시행착오로 생긴 비용도 인정받지 못해 손실이 커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5만원권이 10만원권 수표마저 빠른 속도로 대체해 수표 발행마저 예전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 것도 타격이었다. 조폐공사의 수표 발행수수료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하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만년 적자 공기업으로 추락할 위기가 닥치자 눈을 돌린 분야가 기념주화 시장이다. 은화 위주인데다 부정기적으로 발행하던 시스템을 액면가 높은 금화를 정기 발행하는 식으로 바꿔 새 수익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최근 40년 동안 발행된 기념주화는 25종에 불과하다. 최초의 기념주화는 1970년 광복절에 나온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이다. 우리 역사와 국위를 대외에 알린다는 목적으로 전량을 해외에서 발행했다.
이후의 기념주화 소재는 은, 구리, 니켈 위주였다. 금화가 다시 등장한 것은 17년 만인 1987년 발행된 서울올림픽 기념주화다. 액면가 5만원과 2만5000원이었고 은(3%)과 구리(4.5%)가 섞인 금화였다.
1990년대에는 대전세계박람회 기념주화(1993년·액면가 5만원)가 유일한 금화(순도 92.5%)였다. 99.9% 순도의 금화는 2000년대에 등장했다. 2002월드컵 기념주화(3만원)와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기념주화(3만원)가 그것이다.
이후 지금까지 금화 기념주화는 발행되지 않고 있다. 발행된 기념주화는 시중에서 화폐로 통용할 수 있다. 액면가 5만원짜리 금화라면 5만원어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념주화의 희소성 등을 감안하면 액면가보다는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일반 상거래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번에 전용학 조폐공사 사장이 제안한 금화의 액면가는 무려 200만원이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이 결정하지 않으면 고액의 금화 발행은 불가능하다. 이런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조폐공사가 모델로 삼은 금화 기념주화는 뭘까.
정기적으로 기념주화를 발행한 중국·오스트리아·호주·캐나다를 참고로 한 것이다. 이들 국가에선 기념주화 시장이 활성화돼 '캐나다 13개주 시리즈' '중국 팬더 시리즈' '십이간지 시리즈'같은 금화 기념주화가 계속 발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엔 기념주화를 소장하려는 수요계층이 얇아 고액 금화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조폐공사 관계자는 "작년 기념주화를 발행했을 때 생각보다 수요가 적어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발행된 것 중에는 디자인이 독특한 한글날 기념주화가 액면가의 5배로 뛰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디자인을 제대로 고안하면 수요가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게 조폐공사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