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더 로드'의 원작자 코맥 매카시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제일 문학성이 높은 소설을 썼지만, 궁핍에서 벗어난 적도, 안정적인 삶을 살아본 적도 거의 없는 기이한 작가다. 그의 삶은 매일 치열한 생존의 위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에게 늦은 나이, 아들이 하나 생겼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얻은 단 하나의 혈육. 10년 후, 70세가 넘은 노구의 작가는 열 살 남짓으로 성장한 아들과 함께 미국 엘파소의 한 호텔에 머물며 자신의 삶과 철학이 집약된 소설의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마을이 모두 잿더미에 휩싸인 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긴 생존의 여행을 떠나는 지구 멸망의 대서사시다.

'더 로드'는 2007년 미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퓰리처상을 받은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가감 없이 영상으로 옮긴 영화다. 소설의 질문과 영화의 질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진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리고 그때 어린 아들과 함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는 처음부터 조금 특이한 길을 걸어간다. 지구 멸망의 위기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와 달리, '더 로드'는 '왜 지구가 멸망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과감히 생략하고,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인 문제에 깊이 매달린다. 이유는 분명하다.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구 멸망의 '원인'이 아니라, 지구 멸망의 순간에도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사라졌어." 작은 지진과 함께 1시 17분, 지구의 모든 시계가 멈춰버린다. 세계가 천천히 죽어가고 있고, 농작물이나 동물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이 붕괴된 상황에서 생명력 강한 인간들은 간혹 살아남아 유령 같은 도시를 떠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를 경계하고 인육을 먹는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카트를 끌고 하염없이 남쪽으로 이동한다. 따뜻한 곳을 찾아 불을 운반하겠다는 큰 꿈을 안고 남쪽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부성애에 관한 가장 처절한 고백처럼 보인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이 비고 모텐슨이 연기하는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에 애틋하게 녹아있다. 하지만 '더 로드'는 사실 부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류가 끝내 저버리지 말아야 할 '마지막 희망'에 관한 기록이다. 영화는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지구가 멸망한 후에도 인간은 과연 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철저히 붕괴된 상황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살을 종용한다. 아이에게 이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그래도 살아남아 아이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주장 중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남편은 매 순간 고민한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지. 썩은 통조림 국물을 핥아먹으며, 타인을 해치고 경계하며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궁금하다.

남자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유가 '아들의 생존' 때문이라고 말한다. 총알이 두 발 남은 권총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아들을 해치는 사람이 있으며 모두 날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영화의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묻는다.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인간은 반드시 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만일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때때로 사람을 해친다. 타인의 아픔을 외면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이런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제 좋은 사람들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단다. 우리는 나쁜 사람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아빠는 아직 좋은 사람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좋은 사람일 거예요?" 아버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이미 아버지의 정체는 미궁에 갇혀버린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는 흐트러진 지 오래다.

아버지에게 선은 오직 아들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한다. 다른 사람에게 총을 겨누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를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더 로드'는 한편의 철학서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들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들의 순진한 질문에서 비롯된 삶의 화두들이 거대한 강물을 이루며 가슴에 파문을 드리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더 생각해볼 문제

1. '더 로드'처럼 지구가 멸망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지 상상해보자.

2. 생사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매 순간 선한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 이유를 적어보자.

3. '더 로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한다. 영화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