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된 12초 촉진룰 대비
"배트 선긋기만 하겠다" 올시즌 도입된 12초 촉진룰의 여파로 삼성 박한이의 타격 준비동작에도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박한이는 타석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배팅 장갑을 풀었다 조이고, 헬멧을 얼굴에 대는 등 '그만의 의식'과도 같은 5단계 준비동작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마지막 단계인 '배트로 선긋기'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포츠조선 DB>

최근 삼성이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연습경기를 치를 때마다 박한이의 타격 준비동작을 유심히 살펴봤다. 확실히 간결해졌다. 골프로 치면 지나치게 장황했던 '프리 샷 루틴(pre-shot routine)'이 간단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한이는 "5단계였던 준비 동작을 1단계로 줄이기 위해 노력중이다"라고 말했다. 강화된 규정인 12초 촉진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올해 프로야구에선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12초 내에 공을 던지지 않으면 1차 경고가 주어지며, 두 번 위반하면 구심이 볼을 선언하게 된다. 경기시간을 줄이자는 취지다.

기본적으로 투수쪽에 부담이 생긴다. 삼성 선동열 감독은 "느린 투수들 경우엔 포수와의 사인이 맞지 않아 고개를 두세번 흔들다보면 12초가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꾸로 12초룰 때문에 매우 난처해진 타자도 있다. 삼성 박한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3년 이후 일종의 징크스처럼 습관이 된 박한이의 '딜레이 5종세트'가 논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배팅장갑을 만지작거리고, 낮은 점프 두세번을 하고, 헬멧을 벗어 얼굴을 덮었다 뗀 뒤, 배트로 홈플레이트 뒤쪽을 톡톡 두어차례 친 뒤, 다시 배트로 홈플레이트 앞쪽에 선을 긋는다. '딜레이 5종세트'의 전형이다. 과거 모 방송사에서 시간을 재보니 한번에 24초가 걸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때론 다른 동작들이 번갈아 섞이기도 한다.

12초룰이 적용되면, 타자가 타석에서 스탠스를 잡는 순간부터 초를 재게 되며 투수가 내딛는 발을 올릴 때까지의 과정이 12초 내에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박한이가 두 발을 고정시킨 상태라면, 배트로 선을 긋고 있든 말든 투수 입장에선 공을 던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대해 조종규 KBO 심판위원장은 "실제 그렇게 질문해온 투수가 있었다. 중요한 건 12초룰의 취지는 스피드업이지 결코 투수들에게 페널티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박한이가 바닥에 선을 긋고 있을 때 투수가 던지면 그걸 야구라고 볼 수 있겠는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원칙적으로는 박한이가 타석에서 두 발을 고정시킨 뒤 불필요한 준비동작을 하게 되면 투수 입장에선 시간을 빼앗기는 셈이 된다. 박한이에게만 예외가 적용될 수는 없는 법이니 그가 '딜레이 5종세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박한이는 "엄청나게 신경쓰인다. 바닥 보고 있는데 투수가 던지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굉장히 어색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잘 맞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