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1시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가 켜졌지만 왼쪽 1차로 앞 승용차 한 대가 2~3초 정도 그대로 서 있었다. 뒤쪽 차량이 상향등을 번쩍 켜고 나서야 승용차 운전자가 급히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강남대로 사거리들의 신호등이 '직진 후 좌회전'으로 신호체계가 바뀌었지만 이 사거리 신호등은 여전히 '좌회전 후 직진'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택시기사 김유경(66)씨는 "운전경력 33년인 나도 어디는 좌회전, 다른 곳은 직진 우선으로 신호등이 섞여 있어 갈피를 못 잡겠다"고 했다.
강남역 사거리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차량들이 울려대는 경음기 소리로 귀가 따가웠다. 직진 후 좌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이곳에선 빨간불이 꺼진 뒤 녹색불이 들어왔는데 2~3차로 직진 차량들이 곧바로 출발하지 않자 뒤에 있던 운전자들이 짜증을 낸 것이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택시기사 임지수(46)씨는 "빨간불 뒤에 당연히 좌회전 신호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넋 놓고 있다가 직진 신호를 놓치는 운전자들이 꽤 있다"고 했다.
경찰은 전체 교통량의 70%를 차지하는 직진 차량이 먼저 출발하도록 신호를 주는 방향으로 교통체계를 바꾸고 있다. 경찰은 교통선진화계획에 따라 올 초부터 전국 주요 교차로 신호체계를 '좌회전 우선'이나 '동시 신호'에서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꾸고 있다. 경찰은 우리나라의 교차로 신호 순서가 좌회전 우선, 직진 우선, 동시 신호 등 통일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지난해 3월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5개국의 교차로 신호 체계를 파악하기 위해 현지를 찾았다. 분석 결과 모두 직진 우선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시뮬레이션 결과도 직진 후 좌회전이 교차로 소통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지역 교차로에선 좌회전 우선이나 동시 신호가 유지되고 있어 운전자들이 혼선을 빚고 있다. 특히 교통량이 많은 서울 강남 일대는 신호체계를 헷갈려하는 운전자들 때문에 이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뀐 신호체계에 대한 홍보도 부족하다. 사거리에 신호가 바뀌었다고 알리는 표지판이나 플래카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회사원 박동수(43)씨는 "신호등 옆에 붙은 표지판은 글자가 가물가물하고 길옆에 붙여놓은 플래카드는 버스나 큰 차에 가려 안 보인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6일 현재 서초구와 송파구의 주요 교차로 대부분이 '직진 후 좌회전' 신호체계로 바뀌었다. 그러나 강남구는 좌회전이 허용되는 교차로 92곳 가운데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뀐 곳은 15곳에 불과하다. 삼성역·르네상스호텔 앞·강남세브란스병원 앞 사거리 등 77곳은 여전히 좌회전 우선 방식이다.
경찰청은 강남구 교차로들의 신호를 즉시 바꾸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고 해명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면에 설치된 감지기가 오가는 차량 숫자를 측정해 교통 신호주기를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신호제어 시스템이 깔려있어 교체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 프로그램이 좌회전 우선 방식으로 짜여 있어 교체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경찰은 직진 우선으로 바꿔도 실시간 신호제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교통흐름이 원활할지 검증하고 있다. 강남구청역·포스코·삼릉공원 사거리 3곳이 '직진 우선'을 시험 운영하는 곳이다.
서울경찰청은 신호 혼선으로 시민 불편이 크자 현재 좌회전 우선 신호가 적용되는 강남구 77개 구간도 3월 중순까지 직진 우선 신호를 시행하기로 했다.
입력 2010.02.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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