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바그람 미 공군기지의 서쪽 끝에 자리잡은 '한국병원'. 허름한 1층짜리 목조건물을 사용하는 이 병원 앞에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 30여명이 번호표를 든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바미얀주에서 9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온 60대 환자는 새벽 2시부터 줄을 섰다고 했다. 척추가 아픈 이 환자는 "파르완주 한국병원의 수준이 높다고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올해 17세의 라메쉬아가라는 두통과 난청 때문에 병원에 왔다. "한국 의료진의 수준이 훌륭하고, 좋은 약을 무료로 주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곳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감독하는 한국병원은 필수불가결한 시설이 됐다. 때로는 환자들이 너무 많아 전날 밤 10시부터 바그람기지의 철조망과 이어진 병원 출입구에 긴 줄이 만들어지곤 한다.

병원측은 하루에 100명가량씩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다. 원무과에서 환자 등록을 맡고 있는 세예드 쉬라그하(29)씨는 "이란과 접해 있는 히라트주에서 16시간 이상 차를 타고 오거나 파키스탄 국경에서 오는 환자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돈이 있어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는데 한국 의료진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소문이 난 것이 환자들이 몰려오는 이유"라고 했다.

23일 바그람 기지 내로 들어온 아프간 주민들이 경비업체 요원이 총을 들고 지켜보는 가운데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환자 중엔 이 한국병원에 오기 위해 16시간이나 차를 탄 사람도 있다.

바그람 기지의 한국병원은 지난 2002년 공병 중심의 다산부대와 함께 의료전문 동의부대가 파견된 후부터 무료 진료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동의부대가 2007년 철수한 후 2008년 6월부터 다시 병원 문을 열었다. 이 기지에는 이집트 병원도 있다.

한국병원은 한국인 의사 2명, 약사 1명이 아프간 의사 3명과 함께 환자를 돌보고 있다. 아프간 여자들은 월·수·금요일에, 남자는 화·목요일에 진료를 하고 있다.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는 의미로 히잡을 쓴 채 환자를 돌보는 천정애(39) 간호사는 아프간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아 '바그람의 천사'로 불린다. 이곳에서 다리어(語)를 배워서 환자를 맞고 있다.

바그람 기지의 서쪽 끝에 건설되고 있는 2층짜리 한국병원을 배경으로 23일 한국 노동자들과 현지 노동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나 첨단 의료장비가 부족해서 정확한 진찰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의사 심성훈씨는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複視)현상을 호소하는 50대의 아프간 주민의 경우 현재 시설로는 정밀검사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폐기능 검사, X-레이 정도만 가능할 뿐이다.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때 제일 가슴이 아픕니다." 오는 4월에 2층짜리 병원이 신축되면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병원 관계자들은 환자를 가장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가 잠입할 가능성 때문에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살폭탄 테러가 있을 수 있다는 첩보가 나와 며칠동안 문을 닫기도 했다. 지난해 액체 폭탄까지 잡아낼 수 있는 폭탄탐지기도 설치했다. 아프간 환자들은 촉수검색→스캐너 검색→용역업체 경비원의 검색→폭탄 탐지기→한국경찰의 검색→금속탐지기의 6단계 검색을 거친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 파견된 경찰특공대 요원들이 용역업체 경비원들과 함께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경계를 선다. 외교부의 정연택 바그람기지 지방재건팀장은 "엄격한 검색과정을 통과해서라도 치료를 받으려는 아프간 주민들이 매일 길게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언젠가는 종합병원 규모의 병원을 짓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