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에 대한 과학계의 '되짚어보기'가 한창이다. 지난달 12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발생한 지진은 20만명 이상의 사망자(추정)를 냈다. 과학계의 주된 관심사는 리히터 규모 7의 아이티 지진이 과연 이렇게 막대한 인명 피해가 날 만큼 강력했느냐는 것. 또 과학계는 지진이 추가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구호 과정에서 얻을 교훈은 없는지에 대해 복기(復棋)를 거듭하고 있다.

◆아이티 지진은 사실상 인재(人災)

과학계의 첫 결론은 아이티 지진 피해가 천재(天災)라기보다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것이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 지질학과의 로저 빌햄(Bilham) 교수는 1900년 이후 발생한 지진과 사망자 수를 조사한 결과, 리히터 규모 7의 지진 중에 아이티 지진이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18일자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밝혔다. 빌햄 교수는 지진 발생 직후에 아이티를 방문, 현장조사를 벌였다.

빌햄 교수에 따르면 리히터 규모 7의 지진 중 아이티 지진의 사망자 수는 1908년의 이탈리아 메시나(Messina) 지진보다 두 배 더 많았다. 빌햄 교수는 아이티 지진의 사망자 수가 2004년 리히터 규모 9.0의 수마트라 지진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빌햄 교수는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원인은 지진 자체의 충격보다, 아이티 건물의 부실구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이티의 건물들은 내진 설계는 차치하고, 부실 공사에 가까워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빌햄 교수는 "80% 이상 붕괴된 아이티 학교 건물을 조사한 결과, 재해 현장에서 함량 미달의 철근, 소금기 있는 모래 등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빌햄 교수는 "이렇게 지진이 활발한 지역에 내진 설계 없는 건물은 지진 발생시 대규모 살상 무기가 된다"며 "포르토프랭스의 인구 250만명 중 15%나 죽거나 다친 이유가 바로 부실공사로 지어진 건물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티에 또 다른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빌햄 교수는 "이번 지진을 일으킨 단층의 충돌로 생긴 힘이 모두 해소되지 않았기에 향후 수년 혹은 몇 달 이내에 리히터 규모 7의 지진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사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는 1751년, 1770년 두 차례 대형 지진을 겪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아이티를 떠받치는 '엔리케 단층(Enriquillo Fault)'이 움직이고 있다"며 "엔리케 단층의 변화를 관측하고 있던 지진 분야 학자들이 아이티에 진도 7.2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2년 전에 발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시민이 둘러보고 있다. 지진 분야 전문가들은 아이티 지진으로 수십만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은 부실공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온라인 자원봉사자 대두 주목해야"

아이티의 지진구호를 기점으로 재난구호의 개념이 전환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최근 "넷 효과(net effect)가 아이티를 돕는다"는 기사를 통해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들이 구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대가 열렸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크라이시스커먼스(CrisisCommons)라는 인터넷 업체는 아이티 지진이 발생하자 지방도로, 샛길은 물론 병원, 피난 캠프, 부상자 분류센터까지 포함한 지도를 자사가 운영하는 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 사이트에 올렸다. 이 지도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해 작성했다. 이들은 대부분 아이티 밖에 있었지만, 공개된 위성사진을 참조하거나 아이티 현장에 파견된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눠 지도를 작성했다. 각국 정부 기관들이 아이티 구호지원 현장에서 이 지도를 활용했다.

4636문자 서비스(4636 texting service) 역시 '인터넷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이 문자서비스에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크레올어, 프랑스어, 영어로 쏟아지는 구조나 지원 요청을 적절한 언어로 번역하고 정부기관이나 민간지원단체에 전달했다. 정부의 구호 시스템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를 들어 4636 문자 서비스를 통해 한 병원이 발전기를 돌릴 연료가 떨어졌다고 알리자 20분 만에 적십자가 연료를 공급해줄 것이라고 연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