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용준 기자] 지난 1년은 그에게 정말 여러 가지 기억을 남겼다. 시련도 있었지만 빛나는 영광의 순간이 많았다. 바투스타리그부터 시작해서 3번의 개인리그 우승, WCG2009 그랜드파이널 우승과 선수로는 최고의 영예인 e스포츠 대상, FA 최대어로 e스포츠 팬들에게 '폭군' 이제동(20, 화승)이라는 이름 석 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제자 이제동을 아끼는 조정웅 감독의 말처럼 이제는 'e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이제동은 그동안 꿈틀거리던 잠재본능을 제대로 폭발시켰고, 이제 한국e스포츠는 이제동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2010년을 제2의 도약의 해로 삼겠다는 이제동을 지난 21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 화승 연습실에서 만나봤다.
▲ 애 늙은이 이제동.
데뷔한 지 4년. 드디어 이제동은 스무 살 성인이 됐다. 약관의 나이가 된 그에게 아직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인이 됐다는 의식이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예전 팀 내에서 이제동이 가끔 불리는 애칭은 '애 늙은이'. 나이에 비해 성숙한 행동을 하는 이제동을 보고 선배인 오영종 최가람 김성곤 등 화승 창단 멤버들이 있을 때 부르던 애칭이다. 때론 10대 청소년답게 자신만을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말하지만 이제 이제동에게 개인은 사라져 버렸다. 팀과 동료를 생각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최고참의 위치로 성장해 버렸다.
"일단 떡국을 먹었으니 한 살을 더 먹은 게 실감나네요. 법적으로도 성인이 된 만큼 책임감이 더 생겼다고나 할까요. 정말 남다른 각오르 2010년을 보내야 할 것 같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10대부터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이제까지 도움을 받았다면 이제는 제가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죠. 어느새 위치도 팀에서 최고참이 됐고요. 책임감도 생겼고, 더 가져야죠".
이제 이제동은 오직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화승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 영광과 시련이 함께했던 2009시즌.
2009년은 이제동에게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였다. 4월 바투 스타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8월 에버 스타리그 우승으로 골든 마우스. 해가 바뀌어 2010년이었지만 라이벌 이영호와 '리쌍록'서 승리하며 네이트 MSL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한 시즌서 세 번의 개인리그 우승으로 최고 중의 최고임을 보였다. 여기다가 최고 선수만이 받을 수 있는 e스포츠 대상의 주인이 되면서 명실상부하게 이 시대 e스포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충격의 3패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던 광안리 결승이나 은퇴까지 생각했던 FA 이슈 등이 있었지만 힘든 시간은 이제동을 그만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2009년은 상도 굉장히 많이 받고 우승도 3번이나 했네요. 상도 많이 받아서 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할 수 있죠. 이젠 걱정이 앞선다니깐요. 저도 그렇고 팬들도 기대치가 높아지셔서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마구 생기네요(웃음). 이젠 더 열심히 해야 되요. 아시잖아요. 올라가는 건 어찌보면 쉬워요. 앞만 보고 달리면 되니깐요. 하지만 이젠 전 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안 그러면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어려운 순간도 찾아오고요. 사실 랭킹 1위를 지킬까도 걱정되고. 더 열심히 해서 변함없이 잘하는 선수가 돼야죠".
항상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는 다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면서 2010년 각오를 새롭게 했다.
"설 연휴 때 작은 아버지가 했던 얘기가 기억이 나네요. '프로는 상대가 있는 게 아니고 자기 자신과 싸움'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매 순간이 자신과 싸움이라 이겨내야 한다'고. 한 마디로 정리해주시던데요. 머리 속 깊게 새겨들었죠".
▲ 대학생이 된 이제동.
프로게이머로 이제동은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선수다. 프로리그 2008~2009시즌 다승왕과 정규시즌 MVP, 바투 스타리그 및 박카스 스타리그 우승, 네이트 MSL 우승, 2009 월드사이버게임즈(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 등 스타크래프트 전 부문에 걸친 고른 활약으로 '최고의 저그'와 '올해의 선수'를 차지했다.
그런 이제동이 2010년 새내기 대학생이 됐다. 지난해 서울사이버대학교 2010학년도 상반기 신•편입생 1차 모집에서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에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이버대학교 특성상 캠퍼스의 낭만을 100% 누리기는 힘들지만 의욕은 가득하다고.
"아직은 잘 실감나지 않아요.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오리엔테이션도 가고 캠퍼스 구경도 하고 그러잖아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특성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사이버대학교를 선택했지만 이상하게 학구열이 불타오르더라고요. 말 뿐이 아닌 대학생 이제동으로도 해내고 싶어지는 거 있죠"(웃음).
조심스럽게 이상형에 대해 묻자 이제동은 손사래를 치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예전 화제가 됐던 탤런트 이연희에 대한 질문에는 얼굴이 발그레해 지면서도 자신이 팬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제 나이라면 이성 교제는 당연할 수 있죠. 또 누구나 하고 싶어하고요. 저도 사실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누리고 싶은데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작년 이맘 때도 중요하다고 마음먹고 한 해를 시작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네요. 이상형을 꼽는다면 어렵네요. 요즘 연예인 분들 다 너무 이쁘시잖아요. 작년 바투스타리그 결승전 전에 이연희 씨 응원 동영상은 사모님(조정웅 감독의 부인인 탤런트 안연홍)이 정말 어렵게 영상을 보내주신 거예요. 제가 이연희 씨 팬이라고 자주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끝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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